Aroused(2013)


나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고 법을 위반하지 않는 선에서라면 어떤 선택이든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포르노 배우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성을 판다고 해서 팔지 않는 사람에게 그걸 비난할 권한은 없다. 윤리적 잣대를 강요하지 않는다는 최소한의 이유로 내 딴에는 내가 나름 선입견이 없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오만이었다. <Aroused>를 보는 동안 나의 고정관념은 여러 차례 뒤집혔고 나는 내 생각보다 상당한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포르노배우들에게 제일 궁금했던 건 그녀들이 그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였다. 16명의 배우들은 각기 다른 대답을 늘어놓았다. 방탕하게 살다가 20살이 되자마자 이 일을 시작한 사람도 있었고, 돈 때문에 택한 사람도 있었다. 그런 이유가 있는가 하면 순전히 섹스가 좋아서,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확신해서, 색다른 직업을 갖고 싶어서, 친구의 권유로 등등 다양한 계기가 있었다. 나는 이때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내가 충격을 받았다는 사실에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 내 궁금증 이면에는 포르노 배우가 되었을만한 불가피한 상황(생계가 어렵다든지, 할 줄 아는 일이 없다든지, 협박을 받았다든지 등)이 있을 거라는 고정관념이 깔려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녀들 중에는 성직자 집안 혹은 화목하고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 좋은 대학에서 교육을 받은 배우도 있었고, 학창시절엔 오히려 내성적이고 소심했던 배우들이 많았으며, 가족들이 자신의 일을 지지해주는 배우들도 있었다.


그들은 대체로 자신의 일에 만족하고 후회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녀들이 업계에서 상위 10%에 속한다는 사실도 감안해야 한다.) 후회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의외로 돈보다 내면의 성장을 꼽는 배우들이 제법 있었다. 극도로 소심했던 과거와 달리 이 일을 통해 문제를 돌파할 수 있는 대범함이 생겼다는 것이다. 일에 있어서도 진지하고 프로페셔널한 자세로 임했다. 본인의 일에 철학을 갖고 임하는 배우도 있었는데 현실에서 할 수 없는 섹스는 절대 촬영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지난날을 되돌아볼 때 끔찍했던 기억이라고 회상하고 싶진 않아서라고 한다. 그러나 그녀들의 만족도와는 달리 세상의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았다. 그들은 다짜고짜 욕하는 건 기본이고 성경을 권유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가족의 지지를 받는 배우들도 있었지만 부모님과 연을 끊은 배우도 있었다.


16명의 배우 이외에도 업계 종사자인 또 다른 여성과의 인터뷰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일에 죄책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같은 여자로서 여성을 상품화 시키는 일에 동조했기 때문이라나. 그녀는 여성들에게 이 일을 섣불리 선택하지 말 것을 충고했다. 그 바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사람이기에 그녀가 하는 말에는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 어떤 마음에서 하는 말인지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럼에도 그녀의 말에 동의할 수 없다.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갖고 일하는 배우들보다 후회하면서도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그녀가 더 낫다고 할 수 있는지 확신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내가 선입견을 가졌던 이유, 사람들이 비난하는 이유, 업계 종사자가 충고하는 이유에는 공통적으로 ‘섹스’라는 키워드가 등장한다. 그녀들이 섹스가 아닌 다른 것을 팔았다면 이런 선입견으로부터 훨씬 자유로웠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섹스는 언제나 상품화되었었다. 굳이 포르노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각종 광고와 음악, 영화, 소설 등 흔히 접할 수 있는 매체에서 섹스를 상품화 시킨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그것들을 생산해내는 사람들에겐 아무 말 안하면서 그녀들만 비난하는 건 엄연한 이중 잣대 아닌가. 직접적으로 섹스를 상품화한다고? 좀 솔직해지자. 다들 그렇게 비난해도 뒤에서는 포르노를 소비하지 않는가. 과연 포르노를 소비하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비난의 잣대를 보내는지 궁금하다. 그녀들이 절대적으로 옳지 않다면 포르노를 소비하는 자들도 마찬가지니까. 무엇보다도 그녀들을 비난하는 행위 기저에 본인 스스로 (여성의) 성을 억압하는 심리가 깔려있지는 않은지 고민해 볼 문제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에선 지성이 어떻게 오만과 편견을 낳는지 보여준다. 나는 사람마다 타고난 특성과 성장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나이, 성별, 인종, 출신국가, 직업 같은 포괄적인 개념으로 개인을 정의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항상 유의하고 있다. 그런데도 나는 너무나 쉽게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정의 내린다. 심지어 나는 그 사실들을 유의하고 있단 이유로 내가 편협하지 않다는 오만을 범했다. 하지만 오만과 편견에서 자유로워지기란 그것을 행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사람마다 타고난 특성과 성장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결국 사람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칠 수밖에 없다. 대신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거나 나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다름을 인정하고 차이를 줄여나갈 수는 있다. 16명의 배우 덕분에 내가 갖고 있던 수많은 편견들 중 한 가지가 깨졌던 것처럼 말이다. 나를 전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변화시켜준 그녀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