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hem(2017)



합리적 분노


 일명 ‘ID-7’으로 불리는 이 분노 바이러스는 미국 아이오와주에서 시작된 이래로 전 세계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한 번 감염되면 자제력을 잃고 감정, 폭력, 섹스 같은 극단적인 본능만 추구하는 증상을 보인다. 미국 질병관리센터는 연말까지 ID-7을 잠식시키겠다고 선포했지만 그들의 바람과는 달리 여전히 세계의 절반가량이 미국에서 발생 중이다. 좀비 바이러스 그리고 제한된 공간, 여기까지는 다른 좀비 영화들과 별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러나 <Mayhem>은 지금껏 다른 좀비 영화들이 시도한 적 없는 독특한 설정을 선보인다. 첫 번째는 감염 후 8시간이 경과하면 자연적으로 치유된다는 것. 두 번째는 감염된 상태에서 저지른 행위는 어떤 법적 효력도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


 한편 TSC(Towers & Smythe Consulting)의 잘나가는 변호사였던 데릭은 부당하게 해고당한다. 데릭이 회사를 떠나려는 순간 무언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포착된다. 바로 회사 내부에 ID-7 감염자가 발생한 것. TSC는 질병관리센터에 의해 격리 수용되고 데릭 역시 8시간 동안 꼼짝 없이 회사에 발이 묶인다. 데릭은 이것을 빌미로 상사에게 복수를 다짐한다.


 

조 린치의 설국열차


 <28주 후>를 기대하고 관람했지만 영화가 지향하는 지점은 오히려 <설국열차>와 흡사해 보인다. <설국열차>가 엔진칸을 향해 질주하는 꼬리칸 사람들의 투쟁을 그렸다면, <Mayhem>은 사장 존이 머무르고 있는 꼭대기 층으로 향하는 데릭과 멜라니의 투쟁이다. <설국열차> 속 각각의 기차 칸은 명백한 계급사회를 상징한다. <Mayhem>에서는 건물의 층계를 통해 이를 대변한다. 특히 상승과 하강의 이미지가 두드러지는데 초반 시퀀스에서 데릭은 엘리베이터가 올라갈수록 여유 있는 모습으로 변해가지만 상사에게 해고된 후 지하실로 직행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데릭이 다시 위로 올라가는 과정은 초반 시퀀스와 달리 힘겹게 묘사된다는 점이다. 또한 권력이 데릭에게 이동하는 순간 존은 바닥으로 추락한다.



도덕적 해이


 "Can you do it, Derek? No, because you’re too much of a pussy, which is why I’m up here and you are down there."


- John

 자본주의는 자가 증식과 팽창을 기본 섭리로 삼는다. 모든 인간이 자본으로부터 안전해질 수는 없다. 그래서 사회는 사회에서 가장 힘없는 하위 5%를 떼어내서 자본의 먹이로 던져주었다. 존의 대사는 이러한 자본주의의 시스템을 한 문장으로 축약하는 대사다. <설국열차> 속 하위 5%는 꼬리칸, 그중에서도 아이들이다. 설국열차는 아이들을 착취하는 방식(부품)으로 시스템을 유지한다. 반면에 중산층처럼 보였던 데릭은 회사가 위기에 빠지자마자 바로 제물로 바쳐진다. 또한 데릭과 협력 관계로 등장하는 멜라니는 어떤 인물인가. 그녀는 대출금을 갚지 못해 집이 압류당할 위기에 처하는 인물이다. 마치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연상시킨다. 결국 꼬리칸 아이들과 데릭, 그리고 멜라니는 상위계층의 도덕적 해이로 희생된 하위 5%라는 점에서 같다. (데릭과 멜라니는 워킹클래스를 대변하는 망치와 전기톱을 사용해 복수에 나서는데, 감독이 이 사실을 확실히 짚고 넘어간다는 걸 알 수 있다. 또한 존 역에 백인 남성 배우가, 데릭 역에 아시안 배우가 캐스팅 된 것, 바이러스의 절반이 미국에서 발생했다는 점, 이 모든 것들이 감독이 의도한 정치적 설정으로 사료된다.) 그러나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이 있다. <Mayhem>은 앞서 언급한 두 가지 설정을 통해 도덕적 해이에는 도덕적 해이로 응수한다.



시스템 밖의 삶


 "The higher I rose, the more I felt like I was losing myself in the process."


-Derek

 현대사회는 어느 순간부터 독창적인 사고방식을 경계해왔다. 말로는 창의성을 덕목으로 여기지만 현실은 온갖 종류의 기준을 강요하는 개성 없고 획일화된 시스템이 지배적이다. 데릭의 대사는 관료주의 사회가 개인의 창의성과 삶을 제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사다. 데릭은 마침내 관료제 피라미드의 꼭대기를 차지한다. 그러나 그 순간 그는 깨닫는다. 다시 TSC로 돌아가는 순간, 관료주의가 만든 약육강식의 시스템에 또 다시 순응하게 될 거라는 사실을. 즉, 지금까지 주어진 줄로만 알았던 현실(관료주의)이 사실은 내가 만들어온 거라는 진실을 말이다.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게 뭔지 알아? 문을 여는 거야. 이런 문이 아니라 이쪽 문을 여는 거야. 이 바깥으로 나가는 문들 말야."


- 남궁민수 of <설국열차> 

 데릭은 비로소 새로운 세계를 상상한다. 바로 TSC 바깥의 삶을. 결국 데릭은 TSC를 나와 새로운 삶을 개척한다. 예전부터 꿈꿔왔던 붓 칠하는 삶을. 그는 말한다. 때때로 우리가 잘못된 길로 향할 때마다 ID-7은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줄 거라고. 결국 ‘대혼란’을 의미하는 Mayhem은 ID-7이 아니라 관료주의였음을 이 영화는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