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y Player One(2018)


 처음으로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했던 순간을 기억한다.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이었다. 9살의 나는 스크린을 가득 채운 호그와트 속 세상을 넋 놓고 바라봤었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자리에서 쉽사리 일어나지 못해 엄마 손에 억지로 끌려 나왔던 순간까지도 전부 기억하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시각적인 충격과 재미가 있고 없고 따위의 문제가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불 꺼진 극장에 한데 모여 오로지 영화만을 위해 2시간 동안 숨죽이고 그 세계에 완전히 몰입하는 것, 소설이나 TV에선 느낄 수 없는 체험적 세계, 영화는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험한 강렬한 어떤 것이었다. 나는 그 전율을 아직까지도 기억한다. 그 이후로 나는 천 편도 더 넘는 영화를 관람했다. 때때로 영화는 가장 힘든 순간 유일한 위로가 되어주기도 했고,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주기도 했다. 특히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유할 때 영화의 가치는 더욱 빛을 발했다. 영화는 좋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는 계기가 되었고, 나를 더 풍부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정성일 평론가가 그랬다. 어떤 영화를 사랑한다는 건 그 영화가 세상을 사랑하는 방식을 사랑하는 거라고. 내가 <레디 플레이어 원>을 사랑하는 이유는 영화(대중매체)를 향한 스필버그의 존경어린 마음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의미 없이 시간을 흘려보낸 줄로만 알았던 영화가 내 삶에 스며들어 어느새 내가 영화가 된다는 그 멋진 사상을 말이다. 나는 오늘 아주 오랜만에 해리포터를 처음 봤을 때의 전율을 다시 한 번 느꼈다. <레디 플레이어 원>은 해리포터가 나를 영화의 세계로 이끌었던, <킬빌>의 우마 서먼처럼 용감하고 강인한 여성을 꿈꾸었던, <박쥐>의 세계에 몰입하고자 했던, <그래비티>를 통해 내가 가본 적 없는 세계를 완벽하게 체험했었던 그 모든 순간들을 상기시켜주었다. 자 그러니 어찌 내가 이 영화를 평가할 수 있겠는가. 다시 한 번 9살 꼬마 시절로 돌아가게 한 이 작품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