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kyo Idols(2017)



아이돌 리오는 오늘도 아키하바라의 지하극장에서 공연을 한다. 그 앞에서 노란색 티를 맞춰 입은 삼촌팬 무리가 음악에 맞춰 손을 흔들고 응원구호를 외친다. 그들은 리오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함께 의논하고, 리오를 위한 이벤트를 준비한다. 그들은 소위 말하는 ‘오타쿠’들이다. 어느 삼촌팬은 이렇게 말한다. 리오를 보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다고. 또 다른 젊은 남성팬은 이렇게 말한다. 현실의 연애가 귀찮고 소모적이기 때문에 리오에게서 유사연애 감정을 느낀다고.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리오를 각자의 도피처로 삼는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일본 사회에서는 이런 오타쿠들을 패배자 취급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오타쿠 컬처의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하는 아이돌 산업은 일본에서 결코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세한다. 실제로 몇 년 전 일본을 방문했을 당시 TV에서 AKB48의 총선 방송을 본 적이 있다. 일본에서 아이돌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히 실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오타쿠 문화는 일본에서 더 이상 마이너가 아닌 주류문화인 셈이다.

일본에 방문했던 해 바로 다음해에 국내에선 AKB48의 시스템을 그대로 도입한 <프로듀스101>이 처음 방영되었다. AKB48의 총선이 팬들만 참여가 가능한 시스템이었다면 <프로듀스101>은 ‘국민프로듀서’라는 이름을 전면에 내걸고 대중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갔다. 그 여파는 실로 엄청났다. 실시간검색어를 장악하고 각종 유행어와 패러디를 낳았으며, <프로듀스101>을 통해 탄생한 아이돌그룹 I.O.I는 데뷔 때부터 대형기획사 출신 아이돌 못지않은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그 화제성을 입증하듯 얼마 후 <프로듀스101>을 표방한 프로그램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프로듀스101>의 대성공은 오타쿠와 일반 대중 사이의 장벽을 허문 사건이었다. 오타쿠 문화로 취급받던 기존의 아이돌 문화가 본격적으로 주류문화에 편승한 것이다. 이런 국내의 흐름은 일본의 상황과 언뜻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일본과 국내의 아이돌산업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남자아이돌 중심인 국내와는 달리 일본 아이돌산업의 메인은 단연 여자아이돌이다. 심지어 남자아이돌 산업의 시장규모가 더 크다고 해도 말이다. 이는 일본 사회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일본은 아직까지도 남자 혼자 가족을 부양하고 여자는 살림을 하는 게 당연한 완벽한 가부장사회다. 그리고 가장의 역할을 못하는 남성 내지는 노총각, 실직자는 일본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몇 년 전부터 일본에서 급부상한 ‘초식남’ 역시 이러한 사회적 압박에서 비롯된 개념이다. 그리고 경쟁에서 도태된 남성들은 상대적 약자인 어린 여성을 착취함으로써 남성성을 회복한다. 한마디로 일본 아이돌 산업의 현주소는 남성을 향한 사회적 압박과 기괴한 여성관, 권력구조가 합쳐져 탄생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국내 아이돌산업은 남자아이돌을 중심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이뤘다. 아이돌을 지지해주는 팬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일이다. 아이돌산업이 성장하면서 팬덤 문화도 함께 변화했다. 단순히 아티스트를 응원하는 것에서부터 2차 산업 활성화, 아티스트 보호, 기부, 봉사 등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진화했다. 그중에서도 단연 두드러지는 활동은 ‘보이콧’이다. 보이콧은 아티스트의 활동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활동이다. 또한 권력의 우위를 확실히 정립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보이콧에는 소비력과 경제력이 반드시 뒷받침 되어야 한다. 바로 이점이 일본과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점이다. 국내에서는 아이돌문화를 향유하는 계층이 사회에서 배제된 이들이 아닌 엄연한 사회인이기 때문이다.

일본과 국내의 상황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분명 존재한다. 아이돌문화가 종교적인 성격을 띤다는 것이다. 사실 아이돌문화와 기독교의 종교 활동에는 유사점이 많다. 두 가지 모두 절대적인 우상숭배와 믿음이 기본 전제로 깔리며, 종교인과 아이돌팬은 우상에게서 위안과 안식을 얻는다. 또한 조공, 떼창(응원), 영업 등의 팬덤 문화는 십일조, 찬송, 전도 등의 종교 활동과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종교와는 달리 아이돌산업은 시장경제 논리에 의해 생태계가 유지된다. 아티스트를 지지하는 마음이 얼마나 크든 간에 실질적으로 지지하기 위해선 돈을 지불해야한다. 콘서트에 간다고 치자. 콘서트에 가려면 돈을 내야한다. 그리고 좋은 자리일수록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해야한다. DVD, 앨범 같은 유료콘텐츠와 굿즈, 팬싸인회 전부 마찬가지다. 즉, 팬심이 소비를 촉진시키고 그 소비를 통해 다시 팬심이 생산되는 구조다.

자본주의 세계에서 돈을 지불하는 소비자가 상품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와 애정을 보내는 건 기존의 이치에 어긋난다. 그러나 아이돌산업에선 그게 보편적이다. 참으로 비합리적인 현상이다. 종교 역시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비합리적이다. 그리고 아이돌산업의 핵심은 바로 이 ‘비합리성’에 있다. 우리나라는 전체 국민 중 무교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특히 젊은 층으로 내려올수록 그 비율이 압도적이다. 반대로 일본은 국민 대다수가 토속신앙을 믿는다. 다른 종교가 차지하는 비율은 극소수다. 종교가 없는 나라와 명백한 종교가 존재하는 나라에서 비합리성을 담보로 하고 또 다른 종교적 색채를 띠는 아이돌이 커다란 산업이자 문화로 자리 잡은 것이다. 다만 이 산업이 종교보다 조금 더 합리적인 건 믿어야할 대상이 종교처럼 믿음 속에만 존재하는 막연한 무언가가 아니라, 눈으로 확인 가능한 존재라는 점이다. 먼 미래의 구원이 아니라 지금 당장 나를 구원해줄 수 있는 그런 존재 말이다. 다시 말해, 아이돌산업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진정한 종교 형태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