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혁명: 소년 vs 제국(2017)


 내게는 중국인 친구가 있다. 상하이 출신으로 한국드라마가 좋아서, 지드래곤이 좋아서, 한국의 문화가 좋아서 한국으로 온 친구다. 한국어 실력도 수준급이다. 비단 내 친구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한류팬의 유입은 지금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덕분에 많은 외국인들이 한류의 본고장인 대한민국에 방문하고 있다. 최근엔 방탄소년단의 성공으로 유입층은 아시아에서 유럽과 아메리카로 확장 중이다. 하지만 K-Pop과 K-Drama가 하루아침에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그 기원은 대략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출범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주요 업적 중 하나는 ‘문화정책’이었다. 검열철폐와 창작의 자유 보장이 문화정책의 핵심이었다. 그 결과 90년대 말부터 영화와 드라마 산업은 급속도로 성장했다. 문화산업의 성장으로 한류는 아시아 전역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K-Pop이 영화, 드라마 산업의 바통터치를 이어받았고, 그 인기는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지금이야 한류가 아시아는 물론이고 서부권까지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지만 중화권의 열렬한 지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한류 이전에 동아시아를 지배했던 것은 중화권의 영화와 음악들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홍콩이 있었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기 1년 전, 홍콩은 중국에 반환되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 하에 있었던 홍콩은 하루아침에 정반대의 사상을 지향하는 국가가 되었다. 물론 중국은 50년 동안 현 상태를 유지하겠다는 ‘일국양제체제’를 약속했다. 그러나 홍콩을 향한 중국의 개입은 점차 확대되었다. 2013년, 시진핑이 주석으로 선출되면서 중국의 내정간섭은 본격적으로 심화되었다. 반중인사를 탄압하고 친중파인사를 홍콩 특구에 심는 등, 정치계와 언론계에 개입하면서 통제를 넓혀 갔다. 그 과정에서 문화산업 역시 자연스레 쇠퇴했다. 일국양제를 훼손하는 중앙정부에 대한 반발로 2014년 홍콩에서는 ‘우산혁명’이라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긴 시간 동안 영국령에 속한 채 동서양의 국제도시 역할을 톡톡히 했었던 홍콩으로서는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홍콩의 이야기가 남일 같지 않았던 이유는 우리 역시 투쟁 끝에 민주화를 이룩해낸 역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 가장 최근 투쟁이었던 박근혜 퇴진 운동은 우산혁명과 불과 2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나라가 한참 떠들썩했을 당시, 앞서 언급한 중국인 친구가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민주주의도 항상 옳은 것만은 아니네.” 친구 말인 즉,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이지만 국민의 판단이 틀렸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힘은 거기서 나온다. 비록 실수할지언정 그 실수를 국민의 힘으로 바로잡을 수 있다는 것. 친구는 공산당을 꽤 신뢰하는 것처럼 보였다. 자유를 경험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몰랐던 거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한국드라마와 K-Pop은 정부의 개입이 없는 자유로운 환경에서 탄생했음을, 그 이전에 독재정권을 타파하고 민주주의를 이룩했기 때문에 가능했단 사실을.


 중국은 미국을 뛰어넘는 초강대국으로 거듭나느냐, 붕괴되느냐의 기로에 놓여있다. 중국이 미국의 대항마로 부상할 수 있던 건 개혁개방 정책, 즉 자본주의의 도입 때문이었다. 중국은 70년대 말에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면서 장기간동안 경제성장에만 집중했다. 그 결과 국민들의 불만을 야기했고 이는 ‘천안문 사태’로 이어졌다. 그리고 천안문 사태는 중국의 민주화가 후퇴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로부터 약 30년이 지난 지금, 우산혁명은 실패로 끝났고 중국은 여전히 강경한 입장을 고수 중이다. 설상가상으로 임기제한이 철폐되면서 시진핑의 장기집권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중국은 자본주의의 도입으로 미국에 버금가는 경제대국이 되었지만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다. 자본주의의 가장 큰 이념은 ‘자유주의’다. 자유주의는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하에 개인이 목표를 추구하는 데 자유롭다는 사상이다. 자본주의가 사유재산을 허용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자유주의를 표방하기 때문이다. 중국이 이 사실을 유의하지 않는 한, 홍콩의 목소리를 억압하는 한, 경제대국일지언정 중국이 지향하는 세계최고의 강대국은 결코 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