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최근 본 영화 속 배우들에 대한 인상비평


티모시 샬라메

연기 잘하는 거야 알고 있었는데 '괜찮은 배우'라고 느꼈던 건 미드 <홈랜드>에 출연했을 때다. 티모시는 부통령의 아들역으로 출연했었는데 여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무면허로 운전을 하다 기어코 교통사고를 낸 뒤 후환이 두려워 뺑소니를 저지르고 줄행랑 치는 비겁한 캐릭터다. 어떻게 보면 평면적이고 뻔히 예상 가능한 스테레오 타입의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연기를 잘해도 돋보이기 힘들고, 또 돋보여서도 안 되는 캐릭터다. 데뷔초였던 티모시에게는 다소 어려운 연기일 수도 있었는데 티모시는 딱 스테레오 타입에 걸맞게, 본인이 해야하는 몫 만큼을 연기했다. <홈랜드> 출연 당시 티모시의 나이가 열일곱, 열여덟 대충 이쯤이었던 걸 감안하면 원체 재능있고 기본기가 출중한 배우라는 걸 알 수있다. 그리고 티모시는 그 후에 나온 <Call Me By Your Name>과 <Lady Bird>에서 보란듯이 자신의 연기력을 증명하기도 했다. 얼마전에 개봉한 <Miss Stevens>라는 작품에서도 노련하게 완급조절을 하며 릴리 레이브와 환상적인 호흡을 맞췄었다. 하지만 이 글의 의도는 연기천재 티모시 샬라메 칭찬하기가 아니다. 일종의 의문? 혹은 궁금증 때문에 시작한 글이다. 지금까지 티모시 샬라메가 출연한 작품을 반 이상 봤는데 내가 본 티모시 샬라메는 모두 '10대 소년'을 연기했었다. 연기도 잘하고 연기 스펙트럼도 평균 이상이라는 것도 알겠는데, 과연 성인남성을 연기해도 기존에 보여줬던 수준의 연기력을 보여줄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물론 티모시가 10대 소년 역할만을 골라한다기 보다는 티모시의 외모 때문에 그런 역할이 많이 들어오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직은 (기본적으로 잘하는 배우는 맞지만) 조금 더 지켜봐야 할 배우같다. 실제로 어릴 때 연기력 정점 찍었다가 나이 먹으면서 점점 후퇴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예를 들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할리우드의 라이징 감독들, 거물 감독들과도 점점 많이 작업하고 있는 것 같던데 개인적으로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작품에도 출연하기를 희망한다. 티모시의 연기 스타일은 감정적으로 호소력이 있는 타입인데,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영화에서 배우들은 어디까지나 영화의 소품으로만 사용되고 배우 개인의 역량은 전혀 부각되지 않기 때문에 티모시와는 극과극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작품에선 어떻게 연기하고 어떤식으로 비춰질지가 궁금하다.


문소리

문소리가 엄청난 역량을 가진 배우라는 건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를 통해 아주 오래전에 증명된 사실이다. 그래서 오히려 문소리에 대해선 따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이미 잘하는 배우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엊그제 <배심원들>을 봤는데 그동안 문소리 배우님의 연기를 주의깊게 보지 않았던 게 죄송할만큼 참 '좋은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에서 문소리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가 스크린에 등장하는 순간, 관객은 그녀의 캐릭터가 어떤 캐릭터인지 알기도 전에 이미 '배우 문소리'부터 인식한다. 그런데 <배심원들>에선 배우 문소리가 등장하지 않는다. 시작부터 끝까지 재판장 김준겸만 있을 뿐이다. 그녀가 입은 판사복과 헤어스타일, 말투, 대사 등 그녀가 입고 걸치고 말하는 모든 것들은 처음부터 김준겸의 것이었다는 듯이, 이미 그곳에서 4n년간 살아왔던 사람처럼 그렇게 존재했다. 그녀의 얼굴과 목소리를 익히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배우 문소리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건 나로서는 신기하고 생경한 경험이었다. <배심원들>은 주조연 출연진들 모두가 중요하고 캐릭터마다 할당량이 부여되어 있다. 즉, 특별히 어느 한 캐릭터만 전면에 부각되는 영화가 아니라는 말이다. 또한 출연진이 많은 만큼 캐릭터 개인에 대한 설명은 대부분 생략돼서 오로지 배우의 역량에 의존한 채 캐릭터를 보여줘야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경우에도 감정을 폭발시키기보다는 절제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문소리 배우님은 감정을 절제하면서도 짧은 대사와 씬 몇 개에 김준겸이라는 캐릭터를 완벽하게 표현해냈다. 그리고 내가 연기를 주의깊게 봐서 유독 그렇게 느껴진 걸지도 모르겠지만 발성과 딕션 또한 아주 좋은 배우라는 걸 새삼 실감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연기를 잘하는 배우'는 많아도 '좋은 배우'는 흔하지 않다고. 문소리 배우는 확실히 '좋은 배우'라는 걸 이번 작품을 보고 느꼈다. 예전에 압구정 CGV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탔는데 우연히 문소리 배우님이랑 배우님 일행 사이에 껴서 뻘쭘하게 올라왔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팬이에요."라는 말이 너무 입에 발린 소리 같아서 차마 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자신있게 팬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배우님 더 많은 작품에서 만나고 싶어요.


연기를 배워본 적도 없고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접한 게 전부지만 오늘 이 글을 통해 내가 생각하는 '연기 잘하는 기준'을 정립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누가 봐도 연기를 잘 한다는 게 티가 나는 캐릭터보다는 섬세한 연기력이 요구되지만 연기력이 크게 부각되지는 않는 캐릭터야말로 정말 연기하기 어려운 유형이라고 생각하는데, 두 배우 모두 이 점에 있어서 탁월한 배우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 이상 인상비평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