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

나를 따라하는 사람이 있다. 3년 전에도 같은 일 때문에 연락을 끊었던 사람인데 내 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최근에 연락이 닿았다. 그래서 다시 나를 따라하는 중이다. 내가 입는 옷이나 신발, 가방, 화장품, 내가 듣는 음악, 내가 보는 영화들을 따라 사입고 듣고 보는 건 얼마든지 괜찮다. 그건 따라하는 게 아니라 '괜찮아' 보이기 때문에 소비로 이어지는 거니까. 그런 거라면 오히려 기분이 좋다. 그런데 이 사람은 나의 취향뿐만 아니라 나의 말투나 행동, 성격까지 따라한다. 심지어 일면식도 없는 나의 친구들한테까지 말을 걸며 아는 척을 하고 페이스북 친구신청을 보낸다. 나는 이게 불쾌하다. 나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지난 2n년 동안 선택의 선택의 선택을 거듭한 끝에 지금의 취향과 가치관이 형성되었고 그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과정은 결코 즐겁지만은 않았다. 때로는 삶이 더 이상 떨어질 수조차 없을만큼 완전한 밑바닥까지 추락했다고 느낀 순간도 있었고, 도무지 아무런 희망도 안 보여서 망망대해 위에 홀로 떠있는 듯한 순간도 있었고, 너무 고통스러워서 삶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그 사람은 이런 과정들을 일체 생략하고 아무런 노력 없이 결과만 취득해 내가 되려고 한다. 그래서 불쾌하다. 내 삶을 통째로 부정당한 기분이다. 그렇지만 따로 언질은 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렇게 따라해도 결코 내가 될 수 없을 걸 알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아무것도 아닌 나 따위를 따라하는 사람의 삶이란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불쌍한 삶일 테니까.


125.

<기생충>을 봤다. 확실히 말해두지만 내 취향은 박찬욱쪽이고, 여전히 박찬욱을 제일 좋아하는 감독으로 꼽는다. 시대상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평론가들의 비판에도 영화만 잘 만들면 됐지, 그게 무슨 상관이냐며 박찬욱 감독을 추앙하기 바빴다. 그런데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시대가, 사회가 반영된 작품은 사유의 깊이와 함유자체가 다르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작품을 만들기 위해선 세상에 대한 충분한 고민과 통찰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윤리의식과 도덕관념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한국영화가 <기생충>이라서, 봉준호 감독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한국영화 100주년을 맞이하는 기념적인 해에 참으로 '시의적절'한 작품과 그에 준하는 수상결과가 나왔다. 나는 오늘 아주 오랜만에 영화를 보고 하루종일 가슴이 설레는 경험을 했다. 영화를 보자마자 바로 2차가 찍고싶어지는 작품은 박찬욱 감독의 <Stoker> 이후로 자그마치 6년 3개월만이다. 어쨌든 봉준호, 박찬욱 같은 거장감독들과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건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축복임이 틀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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