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박찬욱을 만나다

​영화를 사랑한다는 것이란 무엇입니까

영화에 관하여 우린 어떻게 경험하고 말하고 간직하고 기억하고 또 새롭게 감흥할 수 있을 것인가. 모두가 영화에 관하여 말하는 시대, 클릭 하나로 수많은 정보를 접하게 되는 시대, 이런 시대에 영화에 관한 우리의 이런 질문은 착오적인 것인가. 아니다. 멈추거나 지나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싸우는 대신 대화를, 대량의 정보 대신 경청할 만한 견해를, 그리고 책상 앞의 결정보다는 느슨한 산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지금은 영화의 산책자가 되어보자. 성급해하지 않고 단정짓지 않으며 그리고 무엇보다 진심을 지닌 채로 영화가 이끄는 생각들을 따라 산책해 보자. 그런데 누구와 함께 이 길을 걷는 것이 가장 좋을까.

두명의 근사한 영화 산책자, <씨네21>에 늘 귀중한 견해를 들려주는 정성일, 허문영 두 시네필이 우리를 안내해주기로 했다. 이른바 '정성일, 허문영의 씨네산책'이다. <씨네21>은 몇주 간격으로 '씨네산책'을 정기적이며 지속적으로 실을 생각이다. 다만, 정성일, 허문영은 둘만 걷기를 원치 않는다. 여기엔 친구가 필요하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따라서 매회 씨네산책에는 친구가 초청되고 두 사람은 그들과 함께 영화에 관한 생각을 나누고자 한다. 이들이 선택한 첫 번째 주제는 '영화를 사랑한다는 것'이며 첫손에 꼽힌 이가 박찬욱 감독이다. 그리고 박찬욱 감독은 흔쾌히 응해주었다. 시네필의 첫 번째 산책에 더없이 어울리는 조화다. 영화의 산책길이 지금 열린다.


영화를 볼 때는 누구나 외로워진다. 불이 꺼지면 언제나 영화를 보는 행위는 혼자가 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영화는 외로운 여행이다. 화면이라는 세계. 항상 낯선 여행. 때로는 이미 여행한 지역을 다시 바운하기도 하지만 이미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다. 영화라는 지도. 종종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영화가 기차에서 시작한 것은 이 얼마나 적절한 비유인가. 그런 다음 사방팔방으로 이어진 영화의 선들. 할리우드영화들. 사막과 세트. 위대한 그리피스. 모스필름의 영화들. 천재적인 에이젠슈테인. 계단들. 치네치타의 영화들. 스펙터클. 고몽의 영화들. 카페에 모인 영화에 미친 자들의 소란. 우파의 영화들. 표현주의. 아마도 가장 열광적인 영화제작자 아돌프 히틀러. 그리고 영화들. 마치 엉킨 실타래와도 같은 길을 따라 기웃거리면서 골목 사이의 영화들은 미로처럼 이어지기도 하고 때로 막다른 골목처럼 닫힌다. 폐허에서 길을 잃거나 혹은 숲에서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

<무방비도시>(1945), 혹은 <라쇼몽>(1950). 점점 더 많아지는 선. 네오리얼리즘 이후의 영화들, 혹은 다다미에 세워진 카메라. 영화라는 밤. 낯선 여행지에서 저녁보다 무서운 시간은 없다. <태양은 외로워>(1962)의 마지막 숏들. 그곳에서 우리는 꿈을 꾸는 것처럼 보는 한 줄기 빛. 오로지 그것만을 따라 우리는 골목들 사이를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천안문의 영화들. 테헤란에서 빠져나온 길을 따라가는 영화들. 동남아 정글의 영화들. 서울의 영화들. 하지만 빛이 희미해질 때, 마치 꺼져버릴 것처럼 어른거리기 시작할 때, 더이상 존 포드가 없는 미국영화, 오즈가 없는 일본영화, 장 르누아르가 없는 프랑스영화, 프리츠 랑이 없는 독일영화, 희미해진 빛 사이로 모기들이 날기 시작하면, 이 낯선 골목의 여행자는 부풀어 오른 상처를 가려움증에 긁으면서 피를 흘릴지도 모른다. 테마파크가 되어 버린 극장. 파일이 되어버린 필름. 입장료의 정치경제학. 조심해야 한다. 어쩌면 뇌염에 그만 정신을 잃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저 정신을 차리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우리의 산책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목표를 버릴 것. 우리는 여기서 지식을 구하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비평의 실험. 실험? 설마! 아니오, 라고 우리는 고개를 저을 것이다. 비평은 점점 더 영화를 부정하기 위해서 동원되고 있다. 비평은 소송이 아니다. 그렇다. 비평은 칠판이 아니다. 그러므로 당신도 우리에게 정보를 구하지 말하야 할 것이다. 어느 곳을 찾아가는 대신 그저 여기저기를 둘러보면서, 골목에서 골목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서, 종종 이웃을 방문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과 우정을 나눌 것이다. 당신은 질문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것으로 무얼 할 수 있을까? 우리의 대답. 그래서 하는 것이다. 그저 우리 사이에 영화가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영화라는 친밀감. 공공연히 선언된 영화의 죽음. 세르주 다네. 어쩌면 우리는 무덤을 배회하느 것일지도 모른다. 드레이어가 우리에게 힘을 줄 것이다. <뱀파이어>(1932). 근심에 차서 망설이면서 하는 말. 영화붕괴전야. 하스미 시게히코의 21세기 영화에 대한 불안. 어쩌면 우리는 폐허를 쏘다니는 것일지도 모른다. 로셀리니가 우리에게 힘을 준 것이다. <이탈리아 여행>(1953)의 화산이 터진 다음에도 꼭 껴안은 연인들의 미라. 차라리 <스트롬보리>(1950). 화산이 금방이라도 터질지 모르는 산 정상을 향해서 걸어 올라가는 할리우드 스타 잉그리드 버그만. 그녀와 함께 걸어 올라가는 로셀니리와 그의 스텝들. 무거운 카메라. 결단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결정.

그러므로 우리의 첫 번째 산책은 영화를 사랑한다는 것이란 무엇인가, 에서부터 시작해볼 것이다. 말하자면 다시 한번! 오늘날 영화에 대한 사랑에서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마치 먼 길을 돌아서 제자리에 온 (것 같은) 기분. 그러나 할 수 없다. 우리는 점점 더 비평이 돌보지 않는 사랑에 대해서 말을 시작할 생각이다. 영화를 본다는 것이 하나의 행위라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차라리 영화란 그 행위 안의 활동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일까. 대화는 여기서 시작되었다. 지혜를 구하는 유일한 방법이 대화라는 것을 가르쳐준 사람은 이미 2000년 전의 소크라테스다. 거리에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서 구하는 지혜. 그런 다음의 사랑의 철학을 전개하는 것. 우리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때 옆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떠올려야 한다. 원자화되어버린 관객. 불가능한 조건들 속에서 우리라는 만남의 회복의 프로젝트. 대화라는 (우리의) 새로운 비평적 전술.

이 대화의 자리에 박찬욱을 초대한 것은 그의 영화에 대해서 물어보기 위해서가 아니다. 만일 그렇게 생각한다면 당신은 우리의 산책을 오해한 것이다. 우리는 영화에 대한 사랑을 말하기 위해서, 그것을 나누기 위해서, 그리고 그것을 배우기 위해서, 박찬욱을 초대한 것이다. 친구의 자리. 우정의 만남. 박찬욱의 말을 빌리면 서로 각자의 영화사의 한끝에 선 사람의 만남을 통해 세개의 영화사, 세개의 시간, 세개의 경험, 세개의 선이 만나는 것이다. 불안해진 영화의 역사. 기진맥진해진 영화에서의 사랑. 온통 함정뿐인 비평의 용어들. 마치 소송에 가까운 별점들. 현재의 사태. 우리는 다시 한번 영화에서 놀람을 경험한 순간들 떠올려볼 것이다. 그런 다음 매혹을 나눌 생각이다. 무엇보다 당신이 영화를 보고 흥분했던 그 첫 번째 순간의 기억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당신이 영화를 사랑했던 첫 번째 감흥의 감각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정성일

​​​​정 성 일 맨 처음 '씨네산책'이란 코너를 떠올리게 된 것은 비평에 대한 염증이랄까요. 사실상 영화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좋아하는 영화를 찾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런 것들을 통해 우정을 나누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최근 영화에 대한 사랑이 식상해지는 상황에서, 비평에 있어 무언가 새로운 주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그래서 첫 번째 산책의 질문은 영화를 사랑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게 무엇인가, 시네필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인가, 그렇다면 첫 번째 초대 손님으로 박찬욱 감독이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사실 초대 손님을 결정한 다음에 제일 소망했던 것 중 하나는 이 대화를 박찬욱 감독의 개인 시사실에서 진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영화의 친구를 만날 때 제일 먼저 하는 행동 중 하나가, 친구를 집에 끌고 가서 자기가 좋아하는 영화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었나 합니다. 그래서 만약 우리가 당신의 시사실에 초대된 상황이라면 지금 당장 과연 어떤 영화를 보여줄 것 같습니까?

​​박 찬 욱 개인 시사실보다는 시네마테크가 훨씬 낫죠. 장소는 시네마테크가 훨씬 더 좋은 공간이고 처음부터 함께 뭘 볼까 고민하고 모이는 게 더 좋지 않나요? 그래서 오늘 <여인의도시>(1980)를 함께 보고 만나면 어떨까 했던 거고요. 그리고 저에게 당장 그런 영화를 고르라면 최근 한번 더 보고 싶은 영화가 <고모라>(2008)예요. 영어자막인데다가 이야기도 파편화되어 있어서 한번 봐서는 정보가 잘 안 들어왔는데 근래 본 영화 중에 가장 재미있게 봤거든요.

​​정 성 일 같은 질문을 허문영씨에게 한다면 어떨까요?

​​허 문 영 몬티 헬먼의 <바람 속의 질주>죠. 순전히 진짜 서부극이면서도 그것을 뒤집는 쾌감이 있어요.

​​박 찬 욱 DVD 사놓고도 못 봤어요. 옛날에 타란티노가 한국에 왔을 때 꼭 보라고 추천했던 감독이 바로 몬티 헬먼입니다. 보내준다고 해놓고 안 보내주더라고. (웃음)

​​허 문 영 나도 그렇고 정성일 선배도 몬티 헬먼을 되게 좋아하는데, 잭 니콜슨이 살인자로 오해받는 카우보이로 나오고, 또 박찬욱 감독이 좋아하는 리 마빈도 출연하죠.

​​정 성 일 나라면 친구들을 초대해 ‘우리 모두 애도합시다’ 라며 데니스 호퍼의 영화들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씨네21>에 그에 대한 추모 특집이 없었다는 게 안타까웠습니다.


​웃으면서 영화 나누는 재미. 씨네필의 쾌감

​​허 문 영 요즘은 덜하지만 박찬욱 감독은 수시로 시네마테크 부산에 왔어요. 지난 해 베르톨루치의 <1900년><1976)을 상영할 때 약간 얼이 빠진 표정으로 극장을 나오던 모 습이 기억납니다.

​박 찬 욱 영화를 짧은 버전으로 봤을 때는 안 좋았는데, 그러니까 분명 좋아한 영화가 아닌데 5시간 넘는 새 버전으로 보니까 너무 좋은 게 참 신기하더라고요.

​​정 성 일 박찬욱 감독이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 촬영 도중 시네마테크에 샘 페킨파 영화를 보러 갔다는 얘기를 듣고 살짝 감동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사실 그건 굉장히 힘든 결정이었을 것이고, 영화를 연출하는 상황에서 영화를 보러 간다는 것은 그 영화를 정말 보고 싶다는 욕망을 표현한 건데, 그런 의미에서 게으른 시네필들에게 경종을 울릴 만한 일이기도 하거든요.

​​박 찬 욱 나는 영화를 만들고 있을 때 특히 더 그러는 것 같아요. 놀고 있을 때보다 오히려 더 영감과 자극을 필요로 한다고 할까. 그래서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상황, 지지부진하고 뭘 해도 내 성에 안차는 그런 상황에 빠져있을 때 그런게 필요해요. 그래서 프랑수와 트뤼포가 직접 영화감독으로 출연한 <데이 포 나잇>(1973)에서 한 영화를 완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 모습이 시간이 남아돌아서 하는 짓이 아닐거에요. 트뤼포 영감은 영화 속에서 정말 몸부림을 치죠.

​​허 문 영 부산에서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촬영할 때 연출부와 제작부로부터 원성을 많이 들었다고 하더군요. 자, 빨리 끝내자. 영화 시작할 시간 다 됐으니까, 그러면서. (일동 웃음)

​​박 찬 욱 <가르시아>(1974)로 관객과의 대화를 하면서 임수정을 데리고 갔는데 영화를 참 좋아하기에 뿌듯했죠. (웃음)

허 문 영 그렇게 촬영 중에 샘 페킨파 영화를 연달아 보고 오승욱 감독과 김영진 평론가와 함께 술자리를 했던 것 기억하시는지요. 그때 “<관계의 종말>(1973)과 <가르시아> 이 두 영화를 하루에 볼 수 있다는 것은 하늘의 축복”이라고 했습니다. (웃음) 그때 박찬욱 감독에게 “그동안 <가르시아>가 가장 좋다고 했는데 <관계의 종말>이 디렉터스 컷으로 나온다면 1순위가 바뀔 가능성이 있을까?” 하고 물었는데 “확답은 못하겠지만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고 했죠. 지금 그 질문을 다시 한다면 어떨까요?

​​박 찬 욱 영화적인 면에서 우수한 것을 예기하는 건 아니니까 <가르시아>에 대한 사랑은 변치 않을 것 같아요. <가르시아>와 <관계의 종말>은 고 이훈 감독과 친했던 시절에 같이 보면서 좋아했던 영화인데, 친구들 사이에서 열광했던 영화는 역시 <가르시아> 거든요. 친구들과 함께 웃으면서 본기억이 더 좋아하게 만들었을지도 몰라요.

​​정 성 일 오늘 박찬욱 감독에게 ‘당신의 시사실에서 진행하자’는 얘기를 했을때 “그보다 오늘 1시 시네마테크에서 만나 페데리코 펠리니의 <여인의 도시>를 보고 근처에서 얘기하자”고 해서 조금 놀랐습니다. 만약에 다른 사람이 펠리니의 영화를 함께 보자고 했다면 그것은 단지 ‘그 사람이 펠리니의 영화를 보고 싶은 거야’ 그런 의미겠지만 박찬욱 감독이 펠리니의 영화를 보자고 하니 좀 특별한 뉘앙스를 받았던 거죠. 그래서 궁금해진 건 박찬욱 감독에게 펠리니는 어떤 존재인가. 하는겁니다.

​​박 찬 욱 펠리니는 나하고 많이 다른 사람이고, 아니 거의 반대 세계에 가까운 사람이죠. 그의 영화 중 제일 좋아하는 건 <아마코드>(1973)인데 내가 죽었다 깨어나도 못 만들 영화인 것 같아요. 그렇게 너무 달라서 호기심이 생긴달까. 샘 페킨파, 로버트 알드리치의 경우 친근감 때문에 좋아하는데 펠리니의 세계는 너무 다르죠.

​​정 성 일 펠리니는 좀 괴상한 자리에 있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미 다 잘 알고있는 것처럼 네오리얼리즘 영화에서 시작해서 60년대 모더니즘 영화를 통과한 사람으로, 바로 그 자리에서 영화를 만들었고, 그의 말년에는 훨씬 더 나아간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사실상 어느 시기에나 펠리니의 서로 다른 초상화를 그릴 수 있다고 할까. 허문영씨가 보는 펠리니는 어떤 사람입니까?

​허 문 영 저는 오히려 그가 후기로 갈수록 더욱 스스로 자유분방해지길 노력했지만 결국 자기에게 맞는 형식을 못 찾아낸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합니다. 오늘 본 <여인의 도시>도 사실을 굉장히 포스트모던하고 환상적이지만, 그 에너지에 걸맞는 그릇을 발견하지 못하고 발산해버렸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카비리아의 밤>(1957)이나 <달콤한 인생>(1960)같은 초기작들을 좋아합니다.

박 찬 욱 <카비리아의 밤>은 <미쓰 홍당무>(2008)를 만든 감독과 배우들이 그렇게 좋아하고 뭔가 영감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펠리니라면 <8 ½>(1963)의 음성해설을 맡기도 했던 정성일 선배가… . (웃음)

​​정 성 일 이 얘기를 꺼내는 가장 큰 이유는 이를테면 가끔 이해하기 힘든 사람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펠리니의 모든 영화가 다 좋다’고 하면, 만일 그 말을 영화학자가 했을 때는 그에게서 관심이 없어지고, 시네필이 그런 말을 했을 때는 그 말이 의심스러워집니다. 시네필이란 결국 취향의 문화이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는데 나에게 시네필은 두 가지 전제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우정의 문제. 나는 저 사람과 같은 영화를 보러 와서 친구가 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웃의 정치학’이라는 생각인데, 나와 취향이 전혀 다른 저 사람의 견해가 궁금하고 그 견해를 존중하고, 그 차이를 존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시네필을 생각할 때 우정과 이웃의 정치학이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보게 됩니다.

​​허 문 영 자기가 좋아하는 영화와 좋아하지 않지만 인정해주는 영화의 간극은 어떨까 하는 점도 궁금합니다. 먼저 박찬욱 감독은 이웃이라는 관점에서 영화에 대해 주로 어떤 연배, 어떤 사람들과 이야기 하는 편인지요?

​​박 찬 욱 시네필이라는 관점에서 <킬리만자로>(2000)의 오승욱 감독과 얘기할 때 그런 우정이나 이웃의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랑 나이가 같고 둘 다 서울에서 어린시절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어떨 때는 외계인으로 느껴질 때가 있어요. (웃음) 재밌는 게 뭐냐면 분명 서로 너무 달라서 ‘’야 너는 그게 그렇게 좋아?’ 하고 핀잔을 줬다가도 헤어지고 집에 와서는, 그런 게 이웃의 정치학인지는 모르겠는데, 그가 말한 영화들을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일동 웃음)


​박찬욱, 지금 현재의 베스트11 (시대순)
1. 잔다르크의 수난(1928) 칼 드레이어
2. 현기증(1958) 앨프리드 히치콕
3. 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1960) 나루세 미키오
4. 침묵(1963) 잉마르 베리만
5. 천국과 지옥(1963) 구로사와 아키라
6. 루드비히(1973) 루키노 비스콘티
7. 쳐다보지 마라(1973) 니콜라스 로그
8. 그랑 뷔페(1973) 마르코 페레리
9. 가르시아(1974) 샘 페킨파
10. 세입자(1976) 로만 폴란스키
11. 화녀82(1982) 김기영


​보고 또 봐도 그저 좋은 영화들을 꼽자면…

정 성 일 최근에 읽은 인터뷰 중에서 구로사와 기요시가 박찬욱 감독을 만난 경험에 관한 글이 있습니다. 질문자가 구로사와 기요시에게 “한국의 시네필들은 어떻습니까?” 라고 묻자 구로사와 기요시는 “만나본 사람 중에서는 박찬욱 감독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라며 꺼낸 얘기가 “그는 모든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그게 몹시 이상해 보였습니다”라는 거였습니다. 말하자면 한국의 시네필들에게는 모든 영화를 다 봐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게 있다는 겁니다. 어떤 영화를 보더라도 집중적으로 봐야 하고, 이쪽도 봐야 하고 저쪽도 봐야 한다는 식인데, 가령 공포 영화라고 하면 그에 대한 모든 영화를 다 알아야 할 것 같은 그런? 구로사와가 말한 것은 박찬욱 감독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 한국 시네필에게 던지는 질문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박 찬 욱 한국의 다른 시네필들에게도 해당될지 모르겠지만, 호기심이 많아서 그런 것 같아요. 내가 시네필이라고 불리는 것과 안 맞는다고 생각한 게 뭐냐면, 지금 말하는 것과는 좀 다른 차원인데 반복해서 보지 않는다는 거예요. 한정된 시간 동안 같은 영화를 연구하듯 두번 보는 것보다 궁금한 다른 한편을 보고 싶은 마음이죠. 그래서 내가 두번 이상 본 영화는 손꼽을 만큼 적어요. 좋합적인 교양을 쌓아야 한다는 강박증보다 뭔가 또 다른 좋은 게 있겠지. 하는 궁금증이 더 큰 것 같아요. 가령 웨스턴을 좋아한다고 해서 웨스턴 장르의 정말 허접한 영화들까지 다 챙겨봐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정 성 일 지금 즉각적으로 가장 여러 번 봤구나, 하며 떠오르는 영화는 무엇입니까?

​​박 찬 욱 <엑소시스트>(1973). 디렉터스 컷이 나오면서 또 보게 됐고. 나중에 또 재개봉을 하기에 극장에서 보고 싶어서 또 보고. 마음먹고 봤다기 보다 기회가 그렇게 됐어요. 볼 때마다 충격적이고 정말 좋아해요. 공포영화는 잘 못보는데 <엑소시스트> 정도는 가능해요. (웃음) 허문영 선배의 경우는 어떤 영화인지?

​​허 문 영 <관계의 종말>. 일종의 정신적 치료제 같은 영화입니다. 모든 게 막혀 있다는 느낌이 들 때 보고 나면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죠. 마지막 엔딩크레딧 올라갈 때 나오는 빌리를 위한 밥 딜런의 만가는 <노킹 온 헤븐스 도어>를 뛰어 넘는 절창입니다. (웃음) 그 다음은 존 포드의 <수색자>(1956)입니다.

박 찬 욱 사실 내가 입에 달고 살았던 영화임에도 <현기증>(1958)조차 한번밖에 못봤어요. 옛날 영어도 못할 때 영어자막조차 없던 시절 VHS로 본 기억밖에 없어요. 나중에 DVD를 사놨는데 뭔가 실망하고 환싱이 깨질까봐 못 보고 있어요. 그리고 나는 기억력이 형편없는 편인데 이상하게 그 영화는 장면들 기억이 많이 나서 그 추억을 안고 사는게 참 좋아요. 새 프린트로 개봉하면 그때는 보겠지만.

​​정 성 일 나는 열번 이상 본 영화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가장 최근에 본 영화중에서 많이 본 건 오즈 야스지로의 <만춘>(1949)입니다.

​​정 성 일 박찬욱 감독을 만나면 꼭 질문하고 싶은게 있었습니다. 좋아하는 감독의 명단은 시네필들이 우정을 교환하는 방식 중 하나이지요. 말하자면 명단의 교환이라고 할까요. 그런데 박찬욱 감독이 위대한 감독의 자리에 로버트 알드리치를 이야기할 때 갑자기 당신의 견해가 궁금해졌습니다. 이를테면 그 자리에 존 포드나 오즈, 혹은 장 르누아르가 올 때 그건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로버트 알드리치를 그 자리에 놓는 사람은 박찬욱 감독 말고는 만난 적이 없습니다. 사실 교과서에서 로버트 알드리치는 (대문자로서의) 작가(Auteur)의 명단에는 없지 않습니까. 앤드루 새리스는 아마도 명단의 작가주의를 시작한 시네필 영화비평가일 텐데 그는 모든 감독을 11개의 분류로 나눈 다음 가장 최상의 자리에 ‘만신전’(Pantheon)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그런 다음 두 번째 자리를 ‘천국의 저편’(The Far side of Paradise)이라고 불렀고 로버트 알드리치를 여기에 넣었습니다. 알드리치와 함께 있는 이름은 프랭크 보재지, 프랭크 카프라, 조지 큐커, 세실 B 드밀, 블레이크 에드워즈, 새뮤얼 풀러, 그레고리 라 카바, 조셉 로지, 앤서니 만, 레오 맥커레이, 빈센트 미넬리, 오토 프레밍거, 니콜라스 레이, 더글라서 서크, 조지 스티븐스, 에리히 폰 슈트로하임, 킹 비더, 라울 월시입니다. 로버트 알드리치를 위대한 감독의 명단에 올려놓은 박찬욱 감독의 견해가 궁금합니다.

​​박 찬 욱 TV <주말의 명화>에서 봤던 <베라 크루즈>(1954)가 제일 처음 본 알드리치의 영화였는데, 영화에 대한 개념이 형성되기 전인데도 ‘미장센이 참 좋구나’하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요. 남성들의 연대와 반목 등의 관계에 대해 흥미진진하게 봤죠. 그는 결국 작업하는데 있어 장르 안에서 얼마나 자유를 갖느냐 하는 문제를 보여준 것 같은데, 그건 내가 하는 작업에 있어서도 그렇죠. 그런게 아마 알드리치를 보면서 만들어진 자의식인 거 같아요. 그래서 그는 내가 영화를 만들기 전에도 좋아했고 만들면서 오히려 더 좋아하게 된 감독이죠. 마초적인 세계를 다룰 때도 있지만 <베이비 제인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1962) 같은 영화도 좋아요.

​​허 문 영 그 분류법의 어디에 위치시켜야 할지 즉각적으로 대답할 수는 없지만 이마무라 쇼헤이나 에른스트 루비치가 나에게 그런 사람입니다. 둘은 정반대의 사람인데 이마무라는 이를테면 영화감독이 곤충학자가 되어 사람을 하나의 곤충으로 생각하고 찍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일본 곤충기>(1963)을 찍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여인의 도시> 보다는 이마무라의 <인류학 입문>(1966)이 더 좋아요. 루비치의 경우는 자크 타티의 영화처럼 완벽한 소우주가 주는 행복감이 있습니다. 현실 그 어떤 것도 담겨 있지 않지만 영화 그 자체로 하나의 완벽한 세계를 보여준다고 할까. 영화 그 자체로 아름답다는 게 어떤 걸까, 하는 느낌. 알드리치에 대해서는 <키스 미 데들리>(1955)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죠. 사실 그 이전까지 B무비라는 개념이 없었는데 어렴풋하게 느끼기도 했고요. 필름누아르라는 것이 로맨틱함이라든가 비극성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어떤 광물 같은 느낌으로 떠올렸다면 그 영화는 얼음 같은 느낌. 온기라는 게 불가능한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박 찬 욱 해외에서 만난 사람들은 나를 필름누아르 애호가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개인적으로 누아르 장르의 고전들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아요. 너무 작위적이랄까, 이리저리 꾸미는 것 때문에. 또 이상한 감상주의가 거기 있어서죠. 반면 <키스 미 데들리>는 거기서 완전히 해독돼 있어서 독소가 별로 없는 순수영화라는 느낌을 줘서 좋았어요. 가령 알드리치의 <더티 더즌>(1967)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같은 알드리치 팬이라도 타란티노는 그게 좋아서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2009) 같은 영화도 만들었을 거예요. 그렇게 같은 감독을 좋아하더라도 서로 다른 각자의 리스트가 있죠. <더티 더즌>처럼 리 마빈이 리더로 출연해 작전을 수행하는 영화라도 새뮤얼 풀러가 만든 <지옥의 영웅들>(1980)이 훨씬 좋아요. 알드리치가 장르에 충실한 영화를 만들 때 재밌는 것 같지는 않고, 또 하나 후기작 중에서 <조지 수녀의 살해>(1968)가 좋았어요. 영화 감독 입장에서 재밌다고 생각하는 건 <빅 나이프>(1955)고요.

​​정 성 일 영화를 볼 때 최대한 정보 없이 보려고 하는데 <친절한 금자씨>(2005)에서 최민식 납치 전까지 장면들은, 박찬욱 영화 중에서 가장 알드리치적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영화가 폐교 장면을 터닝 포인트로 둘 때 <불타는 전장>(1970)처럼 진행되기를 바랐던 것 아닐까 하고요.

​​박 찬 욱 영화를 만들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포인트는, 어떤 장르인 것처럼 몰고 가면서 관객을 오도하다가 아닌 것으로 판명되게 하는 것이에요. 그게 늘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장르 안에서 영화를 만든다는 거추장스러움을 어떻게 내 나름으로 해결하느냐에 대한 해답 같은 건데, 1/3이나 절반쯤 지났을 때 다른 방향으로 감으로써 내가 기대한 장르는 무엇인지 예상하게 하는 게 내 방법론이죠.

​​정 성 일 시간이 지나서 편하게 얘기하자면 <박쥐>(2008)는 시네필 문화가 보편화되지 않은 사회에서는 즉각적으로 문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인터뷰를 보니 ‘이 영화를 두고 난해하다고 말하는 게 이해 안된다’는 요지의 말을 했던데 <박쥐>는 시네필이라는 전제 아래서 유머, 아이러니, 배신, 그리고 거기서 오는 즐거움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박 찬 욱 정말 내 의도는 그렇지 않았어요. 송강호, 김옥빈, 신혜숙, 신하균, 오달수 그 모든 사람들과 함께 고민하면서 끌고 간 거죠. 나와 함께 일하는 스탭 중 류성희는 그나마 영화를 많이 봤겠지만 나머지는 어쩌면 놀랄 만큼 영화를 잘 안 보는 사람들이라 난 그들과 함께 영화를 만드는 것이고 반응을 체크하고 만드는 것이라 그런 지적에 대해서는 별로 동의가 안돼요. 영화 많이 본 사람이 느끼는 재미가 있겠지만 그건 잔재미들이지. 그저 평범함 오락영화 관객도 즐기는 영화를 만들고자 했어요. 아니라면 판단착오였는지는 몰라도. (웃음)

​​허 문 영 박찬욱 감독의 영화 중에서 <박쥐>가 장르의 자기 부정 혹은 장르적 미로 같은 것들이 가장 격렬한 영화여서 그런 것 같습니다. <올드보이>(2003)에 뭔가 뜨겁고 격렬한 정서가 있다면 반대로 <복수는 나의 것>(2002)은 차갑죠. 반면 <박쥐>는 그런 주조음을 관객이 알아채기 힘들었을 겁니다. <박쥐>를 만들면서 주조음이란 게 뭔 소용이야. 그것도 나에게는 구속이야. 하는 생각으로 만들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보충질문을 하고 싶은 게 <박쥐>도 그렇고 사실 박찬욱 감독은 A무비의 자본과 배우들과 함께 작업하는 처지인데, 과연 B무비 스피릿이라는 게 뭘까 하는 겁니다. 자신을 디렉터가 아니라 ‘비렉터’라 표현하는 것도 재밌었습니다. (웃음)

​​​박 찬 욱 B무비라는 얘기는 데뷔작 때 했던 소리인데 제작자나 투자자가 질색했어요. 나가서 그런 얘기 말라고. (웃음) 사실 이제는 스스로 만든 영화를 놓고 그때 이후로 잘 안 쓰는 게 사실인데 묻는 사람들은 많아요. 가령 송강호나 이영애를 데리고 무슨 B무비를 하냐는 거죠. 그런데 또 다른 기준으로 보면 외국에서 내 영화를 소비할 때는 무명배우가 나오는 저예산의 장르영화거든요. 그 차원 속에서 나는 B무비 감독인 거 같고 B무비 정신이라고 하는 것은 분명 장르영화들이고 웨스턴이나 누아르, 갱스터, Sci-Fi, 호러 등 모든 장르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라면, 사실 대부분의 B무비는 쓰레기인데 그중에서 우리가 지금까지 봐줄 만한 정말 독창적인 작품들을 주목하는 거죠. 그러니까 B무비 스피릿이란 결국 쓰레기들 속에서 <키스 미 데들리> 같은 영화를 발견하고 만들 때의 쾌감 같은 것들이라 생각해요.

​허 문 영 한국의 A무비가 해외에서는 B무비로 인식되는 그런 측면이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산업적으로 B무비 시장은 끝나지 않았을까요. 피터 잭슨이나 쿠엔틴 타란티노, 샘 레이미를 보면 B무비적인 것을 산업 자체가 흡수한 형국입니다. 이미 B무비적인 적이 주류의 기획 안에 포함돼 있죠. B무비 스피릿이라는 관점에서 이것은 철저히 상헙적인 영화다. 예술적 야심은 없다. 라고 할 때 충동이 있지 않을까 하는데 그런 충돌을 내부적으로 어떻게 해소하고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박 찬 욱 샘 레이미나 피터 잭슨의 영화를 그들의 출발이 그렇다고 해서 지금 그렇게 볼 수 있을까 싶어요. 타란티노는 확실히 그런 관용구들을 가져와서 만들고 있긴 하지만 그 역시 계승 차원에서 보긴 어려울 것 같고요. 내가 상업영화를 만든다고 할 때는 앞에 괄호가 있는거죠. 괄호 속의 전제는 ‘내가 할 수 있는 능력과 취향이 허락하는 한도 안에서의 상업영화’인 겁니다. 그래서 어떤 제작자들은 <공동경비구역 JSA>(2000) 같은 영화도 만들지 않았냐. 그런 마음으로 지금 만들면 왜 안되냐 하지만(웃음) 그건 그 당시의 선택이었고 나도 변하는 거니까 어쩔 수 없어요. 전에 만든 영화들을 부정하 면서 그 부정을 동력으로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물론 어느 순간 어떤 필요에 의해서 소재를 선택하고 거기 걸맞은 형식이 <공동경비구역 JSA> 처럼 될 수는 있지만 그건 알 수 없는 일이죠. 변화하는 정체성 위에서 그때그때 최대한 상업적인 영화를 하려고 하고 그 근거는 어쨌건 제가 장르영화를 만든다는 거죠. 그리고 늘 최고 스타를 캐스팅 하려 했다는 점에서 그게 내 영화에 투자하는 사람에게나 관객에게 ‘내가 상업영화를 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해요.


​“진정 좋아하는 영화를 리메이크하지는 않을 듯”

​​허 문 영 <박찬욱의 오마주>에서 베스트 10편의 영화를 골랐는데 B무비와 필름누아르가 많고 10편 중 5편이 70년대 영화들이어서 의아했습니다. 그렇게 뽑는 영화광은 아마 100명 중 한두명일 것 같거든요. 그래서 거꾸로 그 명단을 보고서 70년대 영화라는 것이 영화사에서 과연 어떤 의였는지 연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 성 일 사실상 70년대는 고전영화의 종국이 되는 시점인데 히치콕이 살아서 마지막 영화를 찍었고, 존 포드의 새로운 영화가 나왔고, 50년대 거장들의 마지막 영화를 본 시기이고, 한편으로 그 이후를 준비하는 영화감독들이 도착하고 있었고, 유럽 모더니즘 영화가 에너지를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어찌 보면 가장 휘황찬란한 고전 바로크 영화의 매너리즘 시대인데 그런 것에 매혹당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반면 한국영화는 박정희와 함께 정말 끔찍한 시대였고, 한편으로 사실상 60년대 할리우드영화는 정말 재미없다가 아메리칸 뉴시네마와 시작했지만 그 정체는 잘 드러나지 않았을 때입니다. 최근 <대부>(1972)를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다시 보고 새롭게 느낀 건 이게 바로 할리우드 고전영화의 마지막이었구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허 문 영 개인적으로 영화사의 황금기는 50년대인데 고전기도 있고 B무비도 있고 필름누아르도 활발했고 새로운 기운의 전조도 있고 네오리얼리즘 등 거기서 영향받은 모던 시네마도 시작되고 사실상 영화가 가장 재미있었던 시기였습니다. 고전기가 종언을 고한 60년대 새로운 물결을 지탱한 건 정치적 이상주의였던 것 같습니다. 고전기 영화는 생명을 다했고 그 빈자리를 60년대의 정치적 이상주의가 커버했다면 70년대는 둘 다 사라진 파편들만 있는 것 같아요. 형식적으로도 주제적으로도 거처할 곳이 불확실했던 시대이면서, 그 파편들 안에서 에너지를 만들어낸 사람들이 나름 B무비 작가로 인정받기도 했죠.

​​박 찬 욱 60년대가 격변을 겪은 시기라면 그 기운이 장르에 흡수된 시기라는 의미가 아닐까요. 나도 뭔가 확릭되기 전 고전영화의 매너리즘에 끌렸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런 혁명적 기운들이 고전적 문법들을 파괴하면서 자기 문법을 정립하지 못하는 때의 매력을 느낀 것 같아요. 뭔가 어정쩡하고 불확실하고 내부적으로는 균열이 생기며 파열을 일으키는 카오스의 시대라고 할까요.

​​정 성 일 한편으로 70년대를 생각할 때, 미국여화 입장에서 보면 존 포드가 없는 70년대이고, 프랑스는 장 르누아르가 없는 70년대이고, 일본은 오즈나 미조구치가 없는 70년대이고, 독일은 프리츠 랑이 없는 70년대입니다. 그렇게 갑자기 중심의 영화가 깨지고 80년대가 되자 중국 제 5세대와 대만 신랑차오가 시작하고 전세계로 확산되면서 때마침 우연찮게 영화의 테크놀로지 또한 새로운 단계로 점핑하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박 찬 욱 지금 갑자기 되풀이해서 본 영화로 떠오르는게 니콜라스 뢰그의 <쳐다보지 마라>(1973)예 요. 아마도 나에게는 그 영화가 바로 그런 70년대의 기운이 지배하는 영화인 거 같아요. 니콜라스 레이의 영화도 그런 파편들의 세계를 그리고 있는 것 같고요.

허 문 영 똑같진 않지만 한국의 90년대가 서구의 70년대와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한국에서는 바로 8-년대가 정치적 이상주의가 가장 강했던 시기니까. 임권택 감독이 예외적인 우상으로 존재했지만 90년대의 한국영화는 기대거나 맞서 싸울 아버지의 영화가 없이 시작했습니다. 박찬욱과 봉중호도 정치적 진보의 태도를 가지고 있지만 그게 구체적인 정치적 소망으로 드러나는 게 아니라 파편화돼 드러나는 것 같고요.

​​박 찬 욱 이만희의 전통이 더 이어졌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요즘에 와서 DVD로 본 것밖에 없는데 김기영과 이만희를 다같이 자양으로 삼아서 성장하고 공부할 수 있었다면 훨씬 풍요로웠을 것 같아요. 다른 한국 감독들의 경우는 모르겠고 적어도 나는 그래요. 사실 나를 포함한 젊은 감독들이 김기영을 추앙하는 것은 그의 후기작들, 그러니까 그가 망가지면서 B무비 만들면서인데, <하녀>(1960)는 거슬러가서 뒤늦게 거꾸로 발견한 영화들이죠. 우리가 시작할 때 김기영은 농담의 소재에 가까운 영화들의 주인공이었거든요. 가령 <육식동물>(1984)같은 영화들. 물론 <화녀82>는 처음 볼 때 경악할 만한 충격을 줬지만 절반 정도는 농담으로 다가간 게 사실이죠. 아버지의 영화라는 게 그렇게 다가왔으니 당시 사정이 얼마나 엉망이었는지 알 수 있어요.

​​정 성 일 김기영 얘기가 나와서 문득 질문하고 싶은 건 언젠가 <하녀>가 리메이크 된다면 박찬욱 감독이 만들 거라 생각했습니다.

​​박 찬 욱 그렇게 진정으로 좋아하는 영화를 리메이크하는 일은 없을 거 같아요. 만약 리메이크 한다면 별로 안 좋아하는 영화를 할 거 같아요. 아니 안 좋아한다기 보다 뭔가 모티브가 될 만한 맹아를 발견했는데 완성품은 별로라고 생각할 때 리메이크를 할 것 같아요. 물론 임상수 감독이 김기영의 <하녀>를 그렇게 봤을 수도 있는 거고요.

​​정 성 일 어느 순간부터 해외에서 개봉되는 글로벌한 영화를 찍는다는 데서 오는 고민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박 찬 욱 어떻게 해도 해외에서는 아트하우스로 소비될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대규모로 개봉하기는 힘드니까 근본적인 괴리가 있죠. 국내에서는 상업영화로 만든다 해도 해외에서는 시네필의 영화가 되니까. 그래서 내 영화를 수입한 사람들의 고충도 있어요. 가령 최근에 프랑스판 <박쥐> DVD 커버디자인 시안을 봤는데 마치 <트와일라잇>(2008)처럼 완전히 장르영화로 포장돼 있더라고요. 보름달에 박쥐떼가 날아다니는 그림도 그려져 있고. (웃음) 그래서 이렇게 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지만 프랑스에서는 이렇게 해야 팔린다고 말하더라고요. 아시아 사람들처럼 예술적인 안목이 뛰어나지 못한 유럽의 무지렁이들을 이해해달라는거죠. (일동 웃음) 가령 <올드보이> 미국판 포스터도 팬들 사이에 악명이 높은데, 영화에 전혀 등장하지 않는 네온사인으로 가득한 명동 같은 밤거리에 최민식과 강혜정이 걸어오는 그림인데 새로 그린 거예요. 이게 뭐냐고 호통을 쳐도 100개 넘는 시안 중에 고른 거라며 무식한 미국 놈들은 이런 걸 좋아한다나 뭐라나. (웃음)


​박찬욱이 좋아하는 봉준호의 영화. <괴물>

​​정 성 일 현재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를 제작 중인데 그의 어떤점이 당신을 제작자로 만들었나요? 그 역시 당신처럼 글로벌한 영화속에 놓인 감독입니다.

​​​​박 찬 욱 내가 좋아하는 봉준호는 내가 못 가진 것들을 가진 것 같은데, 캐릭터 연출이 무척 대단해요. 나는 영화를 만들 때 캐릭터를 선명하게 잡는 것을 좀 주저하는 편이고 또 그렇게 쉽게 잡히는 캐릭터를 선호하지 않는데, 그런 점에서 봉준호의 영화가 좋아요.

​​정 성 일 봉준호 영화 중 개인적인 베스트는 무엇입니까?

​​박 찬 욱 <괴물>(2006).

​​허 문 영 <괴물>이야말로 B급영화의 속성이 있습니다.

​​박 찬 욱 저도 <괴물>의 그런 점들을 좋아하는 거 같아요. (웃음) 그래도 난 <괴물>이 잘된 게 이상하지는 않아요. 이것저것 산재해 있지만 기본적으로 딸을 찾으려는 아빠의 노력이 중요하다고 봤거든요.

​​허 문 영 그런데 봉준호는 그걸 휴머니즘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딸을 찾는 와중에도 졸고. (웃음)

​​​박 찬 욱 사람들이 그걸 오히려 재미있어 했던 것 같아요. 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이 이상한 사람들이라면 봉준호 영화에 나오는 건 모자란 사람이죠. 그건 정말 관객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괴물>을 구조적으로 완전한 장르 영화라고 볼 수는 없지만 중요한 몇몇 신들은 확실한 장르영화적인 쾌감을 줘요. 정석적인 것과 비정석적인 것이 조화를 잘 이루고 있어요. 가령 <괴물>에서 딸이 달아나다가 꼬리로 잡히는 데서 오는 서스펜스는 정말 완벽한 장르영화적 연출이거든요. 그래서 관객은 확실하게 집중할 수 있는 거고 그게 정말 놀라운 솜씨죠.

​​정 성 일 어쨌건 이제 미국 혹은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만들게 될지도 모르는데, 박찬욱 감독에게 미국영화라는 표현과 할리우드 영화라는 표현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박 찬 욱 굳이 좋아하는 하나를 고르라면 할리우드영화가 아닐까 싶어요. 내가 좋아한 영화는 주로 장르영화고 또한 단연코 스타들의 영화거든요. 버트 랭커스터는 어려서부터 좋아했고 그 애정은 변하지 않는 거 같아요. 리 마빈은 오히려 뒤늦게 철이 들면서 발견한 사람이고요. 버트 랭커스터는 초기부터 모험적인 사람이었는데 나중에 나이 들어서 출연한 <스위머>(1968)를 봐도, 황혼에 접어든 노스타가 수영복만 입고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하는 영화를 어떻게 만들 생각을 했는지 정말 이상했어요. 그래서 할리우드에는 별 영화가 다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 출연 의도가 ‘난 아직도 짱짱해!’ 뭐 그런 건지는 몰라도, 스타가 단순히 청춘의 모습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자기 이미지를 스스로 배반하고 또 활용해 나가는 모습이 좋았어요.

​​허 문 영 장 르누아르도 영화에 반한 이유가 여배우의 클로즈업이라고 한 적 있습니다. 그것이 자신을 영화로 이끌었다는 거죠. 그래서 데뷔작은 물론이고 그의 초기영화들에는 여배우를 향한 클로즈업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할리우드영화를 말할 때 비평에서는 잘 얘기하진 않지만 영화적 체험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 바로 클로즈업인 것 같습니다. 바꿔 말해 그것은 배우에 대한 매혹이기도 하고요.

​​정 성 일 좀 다른 얘기일지도 모르겠지만 <박쥐> 역시 김옥빈이 아니었다면 아마 다른 영화가 되었을 것 같습니다.

​​박 찬 욱 맞아요. 거의 애초의 스토리보드대로 영화를 만드는 것이지만 그걸 만드는 과정에서는 캐스팅이 되고 난 다음 특정 배우의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죠. 특히 나는 외모를 되게 중요시 해요. 예를 들면, 이런 얘기하면 화낼지도 모르겠는데, 옥빈이가 손이 크고 손가락이 긴데 마디가 약간 튀어나와 있는 게 꼭 에일리언 손 같은 느낌도 줘요. (일동 웃음) 그 손이 참 마음에 들어서 신하균을 살해하는 것에 대한 암시를 주는 장면에서, 옥빈이가 두손으로 송강호를 꽉 안는 장면을 그렇게 연출하려고 했죠. 김옥빈이 아니라면 그렇게 찍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 장면들이 곳곳에 있죠.

​​​​허 문 영 저 같은 경우 어릴 때 <요크 상사>(1941)의 게리 쿠퍼에게 매혹된 적이 있습니다만, 게리 쿠퍼가 신사적으로 심리적으로 안정된 공동체 영웅이라면, 감독님은 반대로 버스터 랭커스터의 그 균열적이고 혼란스런 이미지에 매혹된 것 같습니다.

​​박 찬 욱 버트 랭커스터는 다른 배우들과 달리 원초적인 야성을 가진 사람인데, 실제로 따로 뭘 배운 사람이 아니고 서커스 곡예사 출신인 걸로 알고 있어요. 그래서 얼굴도 얼굴이지만 몸매가 완벽한 그리스 조각에 나오는 그런 몸이죠. 그렇게 출발했던 남자가 차츰 정서적으로 복잡한 사람을 연기하게 되는데 그런 모습이 이상적으로 비쳐졌어요. 비스콘티의 <레오파트>(1963)의 모습은 정말 상상이 안 가는 거죠. <레오파드> 에서 파티 끝날 때쯤 귀족의 어린 여자아이들이 까불고 노는 모습을 보면서 ‘저런 천박한 것들’이라며 대사를 할 때 소름이 확 끼쳤어요. 저 사람이 정말 서커스단에서 웃통을 벗고 있던 그런 사람인가, 귀족사회의 살리나 왕자로서 정말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연기였죠. 이후 비스콘티와의 우정도 부러운 게 <폭력과 열정>(1974)에서도 함게 했고 1976년 비스콘티가 세상을 떴을 때 그 관을 들어준 것도 버트 랭커스터였어요. 누군가 나에게 리메이크하고 싶은 할리우드영화를 한편 골라달라고 하면 알드리치가 감독하고 버트 랭커스터가 출연한 <아파치>(1954)에요. 아메리칸 인디언에 대한 모든 관심사가 축약된 영화이기도 하고 예술적으로 뛰어나다고 할 순 없지만 나중에 버트 랭커스터가 종족의 결정에 혼자 반대해 백인들의 가치를 거부한 격렬한 원맨 테러리스트로 나오죠. 물론 계속 웃통을 벗고 나오고요. 이런 얘기할 때는 오승욱과 잘 통하는 편인데. (웃음) 그런데 <아파치>를 리메이크할 때 어떤 배우를 캐스팅할 것이냐. 하면 참 답이 없어요.


​3D. 우려보다는 호기심을

​정 성 일 <아바타>가 올해 가장 큰 이슈였습니다. 3D가 시네필들의 영화적 경험을 바꿀 거라고 생각하시는지요. 3D가 우리의 영화적 경험에 어떤 방식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개인적으로 3D가 그동안의 영화 테크놀로지 역사에서 소리, 색이 입혀졌다는 것과의 차이점을 찾는다면 이미지가 뇌의 스크린에 상영된다는 느낌이 거의 없었습니다.

​​박 찬 욱 그런 얘기를 들으면 어떻게 느끼냐면 3D 영화의 더 큰 발전을 원하는 건가, 하는 거예요. 더 뛰어나고 발전된 기술을 성취했을 때는 이미지가 뇌의 스크린에 상영되는 그런 만족감을 느낄 수도 있는 것 아닐까 하는 거죠. 가령 저는 <현기증>을 3D로 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실제로 그 영화는 히치콕이 3D를 상정하고 만든 영화가 아닐까 싶어요. 미술 전시회 장면에서 바라보고 있는 그림과 그걸 바라보는 킴 노박의 머릿결의 모양이 묘하게 이어지는 황홀한 순간들. 그리고 줌 아웃 트랙 인 효과같은 건 정말 3D의 맹아 같은 느낌도 있거든요. 모든 영화가 3D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해서 좋은 영화도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정 성 일 그럼 근본적으로 박찬욱 감독에게 ‘시네마틱’ 하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런 순간은 언제입니까? 이를테면 영화를 볼 때 아무리 영화가 나쁘게 진행되고 있어도 불현듯 내 마음을 움직이는 순간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바람이 드러날 땐데 그럴 때 그 영화가 세상을 존경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박 찬 욱 바람 하니까 이만희의 <휴일>(1968)이 생각나네요. 남산에서 정말 바람이 많이 불더라고요. (웃음) 인물들과 어울리게 정말 잘 담아냈던 기억이 납니다.

​​정 성 일 이 얘기를 계속해서 던지는 까닭은 시네마틱하다고 말하는 빛의 순간. 바람의 순간이라는 것이 영화에서 굉장히 놀랍고도 미묘한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영화에서 미묘한 것만이 우리에게 영화적인 감흥을 던집니다. 물론 인공조명으로 만들어낸 빛일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거리에 나가 담은 빛일 수도 있고, 영화학자들이나 비평가들이 그런 순간에 대해 의미가 무엇인지 찾는 반면 시네필들은 오로지 그 순간에 대한 감흥만을 느낍니다.

​​허 문 영 가령 장 르누아르의 <익사 직전에 구조된 부뒤>(1932)에서 부뒤가 자살을 기도해 강물에 흘러가는 장면이 있는데, 서사와 아무 관계없이 거의 30초 정도 보여줍니다. 그것을 빼도 문제가 없는데 그 장면에 이르면 그 짧은 순간의 평화, 흐름, 고요한 움직임이 그 어떤 화려한 서사 양식이나 기교보다 훨씬 더 뛰어난 감흥을 줍니다. 3D가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영화적으로 중요한 형식의 문제가 됐고 그것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됐습니다. 3D의 지배는 영화가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순간적인 고요, 평화 이런 것들을 허용하게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들기도 합니다.

​​박 찬 욱 이미지 외적인 얘기를 하자면 <아바타>가 별로라는 사람들은 3D 때문이 안라 원래 그 영화가 그런 차원에서 별로인 건 아닐까요. 이미 <스파이더 맨>이나 <반지의 제왕>에 열광한 사람들이라면 그걸 3D라도 즐기지 않을까, 하는 겁니다. 누구나 좋아하는 <죠스>(1975)가 3D영화라면 충분히 즐길 만하지 않겠습니까. 좀전에도 말했듯 모든 영화를 입체영화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또 그렇게 되지도 않겠지만 만일 그렇게 된다면 어떻게 될지 궁금합니다. 가령 <휴일>의 바람장면은 좋지만 극장에서 직접 내 몸에 부는 바람을 느끼고 싶진 않습니다. (웃음) 요즘은 어차피 닥친 것이라면 우려보다는 호기심이 더 낫지 않나, 하는 겁니다.

​​정 성 일 사실상 영화에서 바람을 보고 감동받는 까닭은 그 영화가 바람을 가시적으로 보여주고 있어서라기보다는, 바꿔 말해 박찬욱 감독이 빛에 감동을 받는다면 그것은 영화가 시간을 찍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에 대한 감각, 그것은 3D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겁니다. 그러면서 시네필의 영화체험을, 보는 쪽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우리 시대가 포스트 시네필의 시대에 접어든 게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그래서 포스트 시네필에 대한 가장 결정적인 차이점은 영화의 여행이 자유로워졌다는 겁니다. DVD를 통해 자유롭게, 과거의 시네필들은 거의 상상할 수 없는, 그러니가 지금의 시네필들은 한손에는 DVD를 쥐고 또 한손으로는 인터넷을 통해서 그리고 영화관이 아닌 자신의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바닥에 누워 영화를 봅니다. 사실 극장에 오지 않는 관객을 적대적으로 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포스트 시네필에게는 이전의 시네필과 달리, 영화가 이제는 필름이 아니라 파일의 형태로 접근 가능해졌다는 겁니다. 제작자의 입장, 자본가의 입장, 자본의 입장, 창작의 입장에서는 파일이라는 것이 복잡한 문제를 야기시키긴 하지만 오로지 보는 쪽의 입장에서는 파일의 형태로 영화가 바뀌었다는 것은 자유롭게 영화에 접근할 수 있게 됐다는 것입니다. 사실 카피라이트의 문제로 생각해본다면 서양세계 중심이었던 정보의 독접으로부터 벗어나, 아프리카 오지의 시네필도 컴퓨터만 있다면 파리의 시네마테크와 똑같은 프로그램으로 자신의 집 안에서 영화를 감상할 수 있게 됐습니다. 문제는 한국에서는 고전적 시네필과 포트스트 시네필이 동시에 발생하고 그들이 공존하는 독특한 형태를 보인다는 점입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영화를 볼 때 가장 좋았던 건 ‘어쩌면 이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것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이었습니다. 영화를 오로지 머릿속에만 저장할 수밖에 없을 때 말입니다. 그때는 영화를 보는 태도가 필사적이 됩니다. 그렇다면 박찬욱 감독에게 시네필로서 제일 큰 재미는 어떤 순간입니까.

​​박 찬 욱 직업상 처음 보는 영화를 자꾸 만나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공통된 영화를 통해 대화를 풀어가는 순간들입니다. 모든 대화를 시작하는 데 있어 가장 빠르고 효과도 좋고 누구도 저항하지 않죠. 그런데 그런 대화를 통해 얻는 뼈아픈 교훈은 요새 스튜디오의 중역들이나 프로듀서들이 그런 대화를 나눌 때 좋아했던 영화들과, 막상 작업에 들어가면 좋아하는 영화들이 달라진다는 거죠. (일동 웃음)

​​허 문 영 영화를 둘러싼 사람들의 우정이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함께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계약상의 의무와 권리를 뛰어넘는 우정뿐만 아니라, 창작자와 비평가의 우정도 성립 가능한 드문 분야가 영화입니다. 최근에 다시 본 주앙 세자르 몬테이로의 <신의 코미디>(1995)가 이 영화가 만들어지기 얼마 전에 죽은 세르주 다네에게 헌정되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래서 평론가들이 필요한 거구나!” (웃음)

​​정 성 일 동세대 한국 감독과 영화얘기를 해보자면 어떻습니까. 가령 오즈 야스지로는 자신이 무척 좋아하는 영화들임에도 미조구치 겐지의 <기온의 자매들>(1963)이나 나루세 미키오의 <부운>(1955) 같은 영화는 자신이 절대 찍을 수 없는 영화들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의 <괴물>은 자신이 충분히 찍으려고 할 만한 영화 아닙니까?

​​박 찬 욱 아뇨. <괴물>은 영화 이야기와 미장센 그뿐만 아니라 CG작업이나 공정에 있어 내가 도저히 닿을 수 없는 한계를 넘는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갑자기 ‘이제부터 난 홍상수야’라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웃음), 그동안 쌓아온 미학적 토대나 주어진 그때그때의 환경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다른 누군가의 영화를 그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허 문 영 나는 요즘 이창동, 봉준호, 박찬욱, 이 세분이 다 따로 작업하고 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고 있지만 서로 조금씩 영향을 주고받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박 찬 욱 봉준호하고야 서로 미리 각본을 읽고 하니까 그런게 있을 수 있겠고 이창동 감독은 전에는 잘 몰랐는데 <밀양>(2007)에 대해서는 통하는 게 있다는 생각을 하긴 했어요. 나 역시 구체적으로 뭐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는데 그런 걸 처음 느껴봤죠. 그리고 <시>를 어떻게 만들겠다는 아웃라인을 들어본 적 있는데 정말 감탄한 적 있습니다. 아 이런 거구나, 상상만 해도 멋지다고 생각했죠. 아직 못 봤는데 사실 너무 기대가 커서 보기가 두려울 지경이에요. 제목도 <시>라고 하니 굉장히 멋지고 나와는 아주 다른 스타일인데 나를 감동시킬 만한 뭔가가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밀양>의 송강호는 정말 놀라웠죠. (웃음)

​​허 문 영 <마더>(2009)를 보고 <올드보이>에 대한 은밀한 변주 혹은 논평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습니까?

​​박 찬 욱 으음.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습니다.

​​허 문 영 아무래도 구경꾼은 그런 연상 작용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한데, 정성일 선배는 <마더>가 엄마의 성욕과 근친상간의 얘기라고 보았고, 나는 <마더>가 <올드보이>의 근친상간의 모티브를 은밀하게 끌여들여서 맥거핀으로 쓴다고 느꼈습니다.

​​정 성 일 시네필의 즐거움은 영화 사이의 유사성을 발견하는 건데, 오마주나 카피의 의미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임상수의 <하녀> 마지막 장면도 즉각적으로 <올드보이>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그리고 <올드보이>를 거울에 세워놓으면 자연스레 <마더>가 떠오릅니다. 부녀가 모자로 바뀌었고 그리고 마지막 순간 망각을 택하는 것까지.

​​박 찬 욱 하, 그러네요.

​​허 문 영 망각이란 요소는 <시>와 <밀양>에서도 주요한 모티브로 등장합니다. 한국사회의 지역적 문제의식을 공유해서일 수도 있겠지만 의식하지 못한 상태로 은밀한 영향을 주고 받았을 수도 있다는 느낌입니다. 굉장히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고 그걸 어떻게 잊느냐의 문제는 <박쥐>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그런 모티브가 최근 세 사람의 영화에서 공통적으로 다뤄지는 거 같습니다.

​​박 찬 욱 이래서 평론가들이 필요한 거구나! (일동 웃음) 내가 늘 내 영화를 어떻게 떠올렸는지 몰라도 충분히 흥미로운 얘기입니다.

​​정 성 일 그걸 우리 토픽으로 연결시키자면 시네필과 영화학자의 방법론 두 가지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시네필의 방법론은 영화를 영화로 설명하고 싶어 합니다. 이게 둘의 중요한 결별지점인데, 시네필들에게는 각자의 이상적인 영화가 있고 영화 보는 내내 자기가 감독인 것처럼 조립하기 시작하고 친족관계를 찾고 계보나 지도를 짜고 그것을 확장시켜 자기 나름의 필름 히스토리를 만듭니다. 그러면서 교과서의 영화사에 대해 수정을 요구합니다. 좀 다른 얘기지만 박찬욱 감독은 비평도 썼고 영화도 직접 만들고 비평과들과의 만남도 경험했는데, 나는 지금도 비평가 박찬욱이 예전 내가 몸담고 있던 영화지 <키노> 2008년 5월호 짐 자무시의 <데드맨>(1995)에 대해 썼던 글이 굉장히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전영객잔’의 필자로 활약하는 것도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웃음)

​​박 찬 욱 사실 내 영화에 대한 비평은 잘 읽지 못해요. 좋은 예기를 해주면 좋은 대로 오그라들고 또 혹평하는 글을 또 그래서 굳이 보고 싶지 않고. 가령 데뷔작 <달은… 해가 꾸는 꿈>(1992)을 만들었을 때 단 하나의 비평도 없었어요. 단지 학교 동기 중 배병호라는 친구가 불쌍해서 써준 게 하나 있는데 거의 내가 불러주다시피 “야, 이렇게 써” 해서 나온 게 유일한 리뷰였죠. (웃음) <3인조>(1997)도 뭐 상황은 다르지 않았는데 그러다 <공동경비구역 JSA>(2000) 때 갑자기 많은 리뷰가 나왔을 때 감당이 안됐고 그것 자체로 대만족이었죠. 흥행이 크게 된 것은 현실적인 삶을 바꾸는 일이 됐지만 감독으로서는 많은 리뷰들이 터져나온 게 가장 감동적이었죠. 거의 한편의 리뷰도 못 받아본 영화를 두편 만든 사람이 그리 됐으니. 그래서 주변 감독 중에 ‘정성일이 씹었네, 어땠네” 하는 애들을 보면 ‘야, 다뤄줬잖아, 그게 얼마나 좋아’ 그렇게 얘기합니다. (일동 웃음)

​​허 문 영 그렇게 두편의 쓰라린 기억을 안은 채 국내영화 흥행기록을 갈아치운 건 엄청난 반전입니다. 그러다 <복수는 나의 것>(2002)으로 방향을 틀었다가 흥행적으로 쓰라린 경험을 하고 다른 여타의 영화제에서도 환대받지 못한 느낌은 어땠습니까?

​​박 찬 욱 <공동경비구역 JSA>가 베를린 경쟁부문으로 갔는데 <복수는 나의 것>이 비경쟁으로 가니까 대우가 달랐어요. (웃음) 숙소가 다른 건 참겠는데 주상영관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었죠. 20분도 더 걸리더라고요. 뭐 농담처럼 한 얘기고 앞서 만든 영화와 너무 정서적으로 다르니까 관객과의 대화도 기억에 남아요. 베를린영화제 때 한국영화가 상영 되면 과거 광부나 간호사로 독일에 가셨던 한국 분들이 많이 오시는데 ‘한국의 좋은 모습을 갖고 와야지 이게 뭐냐’ 그러시는 분도 있고 ‘내가 지난해에 <눈물>의 임상수 감독도 야단을 쳤는데 좋은 것 좀 가져와. 한국이 부흥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거 좀 가져오라고’ 라고 하는 분들이 꽤 있어요. (일동 웃음) 정말 임상수는 맞을 뻔했다고 들었습니다.

​​정 성 일 <올드보이> 이후는 늘 해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대되고 있습니다. 해외영화제를 나가는 느낌은 어떻습니까?

​​박 찬 욱 베니스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초청된 옴니버스영화 <쓰리, 몬스터>(2004) 빼고는 다 그러네요. 칸이든 베니스든 베를린이든 ‘이런 장르영화를 가지고 예술영화 다루는 영화제 온 기분이 어떠냐’는 요지의 질문을 항상 받는데, 솔직히 말하면 지금껏 한국영화가 장르영화로 해외에 어필한 적은 없으니 솔직히 자랑스러울 때가 있어요. 사실 나 스스로 인정했다기보다 전에 <씨네21>을 통해 최양일 감독과 대담한 적이 있는데, 그런 것에 대해 내가 좀 쑥스러워하니까 대뜸 최양일 감독이 “박 감독 그러지마십시오. 이긴건 이긴 겁니다” 그러시더라고요. (일동 웃음) 솔직히 이겼다는 생각은 아니지만 그들만의 리그 안에서 아시아영화에 대한 시선을 바꾸는 계기는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박찬욱이 사랑한 스타 5명
1. 버트 랭커스터_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2. 다카미네 히데코_독립적인 여성, 꽤 고집스러워 보인다.
3. 최무룡_달콤한 쾌락주의자, 눈웃음.
4. 리 마빈_3無정책; 무표정, 무감정, 무성의
5. 더크 보가드_남자 몸에 깃든 여성, 한없이 섬세해.


​영화 만들기란, 주변에서 도움 얻는 것

​​정 성 일 보지 못한 영화 중에서 혹시 지금 가장 빨리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영화는 무엇입니까?

​​박 찬 욱 올해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전생을 기억하는 분미 아저씨>가 궁금합니다. 2006년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일 때 그가 만든 <징후와 세기>(2006)를 봤는데 달랑 하나만 갖고는 잘 모르겠더라고요. 이 영화로 뭔가 가능성을 볼지는 모르겠는데 상을 줘야 할지는 난감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어떤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로 한 걸음 나아간 거라면 당장 확인하고 싶어요. 거기에는 개인적인 관심사도 얽혀 있는데 동생인 박찬경이 여오하와 미술 사이에 걸친 작업을 하고 있어서 좋은 참고가 될 것 같아 권하기도 했죠. 아무튼 그해 잘 모르던 세 아시아 감독인 차이밍량의 <홀로 잠들고 싶지 않아>, 지아장커의 <스틸 라이프>, 아핏차퐁의 <징후와 세기> 세편을 만났는데 나에게 굳이 한 사람을 고르라면 아핏차퐁입니다.

​​허 문 영 영화를 만들다 뭔가 막혔을 때 어떻게 풀어갑니까?

​​박 찬 욱 올바르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하다하다 막힐 때 주변에 물어봅니다. 마누라, 프로듀서, 촬영감독, 배우 등 ‘여기서 어떻게 해야 돼?’ 가 아니라 ‘이것 중에 뭐가 좋아?’ 하고 물어볼 때는 있죠. 그렇게 해서 대답을 듣고 그것들을 가지고 결론을 내리는 그 단계라는 게 사실은 굉장히 창조적인 과정이에요. 번개처럼 영감을 맞아 단숨에 쓰는 것과는 다르지만 오히려 그런 번개를 맞는 것보다 더 재미있습니다. 그렇게 단계를 즐 길 수 있는 게 영화라는 예술 창조의 중요한 즐거움인 거 같아요. 그건 미술가나 음악가와 달리 영화감독이 가지는 즐거움입니다. 반대로 영화감독이라면 꼭 갖춰야 할 자질인 거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어떤 신을 정정훈의 도움으로 만들었다 해도 정작 그는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제가 뭘 했나요? 그러고. 그런 식의 창조과정의 화학작용이라는 게 참 오묘해요. 그걸 즐기는 것이야말로 집단창작을 하는 영화감독의 중요한 부분이죠. 영화감독이 되려는 사람은 그걸 좋아해야 합니다. 벼락 맞아서 단숨에 시를 써내려가는 게 아니라 그렇게 주고받고 대화를 나누며 만들어가는 게 매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감독을 해야 합니다.

​​정 성 일 영화 만드는 게 좋은 게 주변 사람의 도움을 얻는 겁니다. 나 역시 <카페 느와르>(2009)를 만들며 심지어 제작부 막내가 무심코 던진 어떤 얘기에서 뭔가를 찾았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정말 공감하는 얘기입니다.

​​박 찬 욱 제작부 막내는 말할 것도 없고 가령 내가 송강호와 교감을 이뤘다면 바꿔 말해 그것은 송강호 안에 들어 있는 이창동과 봉준호와 교감했다는 얘기이기도 하죠. 송강호 안에는 본인도 있지만 그 안에는 다 그렇게 구성돼 있으니까.

​​정 성 일 배우를 놓고 감독들이 근친상간하는 건가요. (웃음)

​​박 찬 욱 그러니까 정성일 선배는 신하균을 놓고 저와 근친상간을 한 겁니다. (웃음)


​우리는 왜 다른가라고 질문하세요

​​정 성 일 마무리 얘기를 하자면 시네필이 영화에서 중요한 가장 큰 이유는. 오로지 시네필의 존재만이 영화적 체험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성립 가능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만이 영화에서 매혹이란 게 뭔지 설명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영화적 순간이란 시네필의 순간과 동의어입니다. 그리고 시네필의 위대한 능력은 영화가 보여주는 것 이상을 보여준다는 겁니다. 말하자면 오로지 시네필들만이 지금 그 영화에서 무엇이 자신을 매혹시켰는지 설명하려고 노력합니다.

​​박 찬 욱 맞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얘기를 풀어내는 사람은 많죠. 정치하는 사람도 그럴 수 있고 경제학자, 인류학자, 다 그들 나름대로 어쩌면 감독이 의도한 것 이상을 볼 수도 있습니다. 오직 시네필만이 영화 그자체로 보고 또 그 이상의 기준이라면 바로 나와의 관계를 보는 거죠. 그것만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고 폐단도 있지만 출발은 거기여야 하고 결론도 그것이어야 해요.

​​정 성 일 오로지 시네필의 존재만이 영화학의 무능력을 증명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영화학이 감히 그 매혹을 설명하려고 달려드는 순간 유명한 수술대의 교훈이 성립합니다. 수술은 성공했는데 환자가 죽었어, 라고. 그렇게 시네필들이야말로 미라가 될 뻔한 영화에 생명을 불어넣는 게 아닌가 합니다.

​​허 문 영 그 말과 관계해서 <박찬욱의 오마주> 맨 첫 페이지에 인상적인 말이 써 있어서 옮겨왔습니다. “그러나 영화광들이여, 잊지 말라. 당신의 영화가 인생의 모든 것을 가르쳐주지는 못한다. 창 너머로 보기보다는 직접 몸을 담글 때는 바다는 더 잘 이해되는 법.” 말하자면 이게 시네필들한테 끊임없이 던져져야 하는 질문인 건 확실합니다. 이 구절을 보고 생각난 건 정성일 선배가 차이밍량과 관객과의 대화를 가질 때 한국의 젊은 예비학도가 물었던 내용입니다. ‘영화를 너무나 만들고 싶은데 도대체 어떤 영화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요’ 라고 얼토당토 않은 질문을 했는데, 차이밍량이 수도승처럼 ​“자 밖으로 나가서 하늘을 보세요. 구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고, 그걸 보고서도 영화가 뭔지 굳이 만들고 싶다면 만드십시오라고. 현실에서 하늘이라는 멋진 스크린을 보고, 실제로 바다를 체험하고, 하늘의 구름을 직접 눈으로 본다는 것 자체가 인간이라는 동물에게 경이로운 체험인데 왜 굳이 시네필들은 영화 안에서 조그만 바람을 느낄 때 흥분하는가. 스스로에게 그런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박 찬 욱 사실 그 문구는 <시네마천국>(1988)에 대해 썼던 내용 중 일부인데 편집자가 그걸 따로 뽑았더라고요. (웃음) 아무튼 방금 말씀하신 건 영화가 일상을 낯설게 만드는 능력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같은 광량의 햇빛이라도 내가 늘 아내와 얘기하는 침실에서 보는 햇빛과 어디 방글라데시의 한 이름 모를 부부의 침실을 엿볼 때 발견하는 햇빛의 느낌은 다르죠. 저 햇빛이 저런 각도로 저런 느낌을 만들구나, 저럴 때 솜털이 저렇게 보이는구나, 하고 전혀 다른 느낌으로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낯설게 만들고 영화를 낯설게 봄으로써 내 삶을 다른 각도로 조명하게 되는거죠.

​​허 문 영 많은 매체들이 20세기 들어 그런 노력을 많이 했는데, 결국 지금에 와서 다시 생각해도 그 어떤 매체도 영화보다 사람의 감각을 재활성화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건 어떤 의미를 전달받느냐가 아니라 감각과 신경조직의 재활성화라는 측면입니다.

​​정 성 일 시네필의 경험 핵심은 마법적 황홀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정체를 알고 싶어서 20대 때 기호학, 구조주의, 마르크시즘, 정신분석학 책들을 열심히 봤습니다. 얻은 교훈은 두 가지 입니다. 하나는 아무리 열심히 봐도 거기에 답이 없다는 것. 두 번째가 사실 중요한데 이 연구들의 공통된 목표는 이 마법적 황홀함을 부정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겁니다. 결국 이 공부를 덮으면서 하게 된 결심은 이 마법적 황홀함을 방어해야 한다는 태도입니다. 사실 그런 점에서 영화학에 대한 시네필들의 저항, 앞서 얘기한 ‘시네마틱’한 것에 대한 방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게 공부하지 말라는 말로 들려서는 안될 것입니다. 거기에는 각자의 이데아를 갖고 있을 겁니다. 우리는 시네마틱이라는 단어로 방어하고 공격에 저항하는 심정으로 연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결국 던지고 싶은 질문은 박찬욱 감독에게 영화란 무엇입니까. 아니 영화는 결국 누구입니까?

​​박 찬 욱 두서없는 동문서답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아까 오승욱과의 엇나간 우정에 대해 얘기했는데, 그 우정이란 게 묘한 것이 내가 모르는 영화의 감흥이라도 꾸준히 듣고 체험하다보면 뭔가 되더라, 하는 겁니다. 처음에는 ‘야. 내 나이 먹어서 장철 영화를 보려니 좋겠냐?’ 불평하다가도 오승욱과 주성철 기자의 음성해설로 쇼 브러더스 영화들을 보고, 또 정성일 선배의 <철수무정>(1969) 음성해설을 들으며 영화를 보다보면 어려서 전혀 무협영화에 대한 기억이 없음에도 ‘오 저게 뭐지?’ 하면서 정말 마법처럼 어떤 느낌이 올 때가 있어요. 내가 그들과 대화하지 않았으면 전혀 모르고 지냈을 세계인데, 정말 왕우가 칼을 넘고 스윽 날 때 나 역시 뭔가 지금 껏 한번도 감탄한 적 없었던 우아한 걸 보며 감탄합니다. 최근 두기봉 감독도 ‘그래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다 이거지?’ 하면서 보기 시작한 경우예요. 베니스 영화제 집행위원장인 마르코 뮐러가 두기봉에 대해 열렬한 감탄을 늘어놓았고 주성철 기자가 얘기한 두기봉의 영화들, 그리고 허문영 선배가 쓴 <익사일>(2006)에 대한 격찬을 보면서 굉장히 궁금했어요. 그런데 <익사일>에 대한 허문영 선배의 찬사를 전혀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가 (웃음) <흑사회2>(2006)에서 딱 걸렸죠. 그건 나에게 정말 걸작이었습니다. 그런 게 시네필 문화 안에서 ‘영화란 무엇인가?’ 라고 질문할 때의 쾌감 아닐까 싶어요. 아니 이 영화에서 그들의 감탄은 도대체 어떤 순간에 터져나오는 걸까. 같은 영화를 보면서도 그들은 내가 못 본 것을 봤다는 얘기인데 도무지 뭘까, 하는 시네필의 미스터리 말입니다.

​​정 성 일 그렇다면 비평에 대해서는 어떻습니까? 시네필의 스펙트럼을 더욱 확장시켜주는 감독과 비평가의 관계에 대해서.

​​박 찬 욱 가령 내 영화에 대해 쓰는 분들의 경우에도, 내가 도무지 인정할 수 없는 영화를 극찬하는 평자가 내 영화를 인정할 때는 ‘내가 그 수준이란 말이야!’ 하면서 기분이 나쁠 때도 있어요. (웃음) 반대로 내 영화를 씹으면 그 사람의 다른 영화의 리뷰를 읽으면서 이런 영화 좋다고 하는 사람이니까 그런 거지 뭐. 하고 생각하기도 하고. (일동 웃음) 그렇게 나와 평론가의 관계는 결국 나와 다른 감독과의 관계와 같아요. 이전에 한 영화를 어떻게 평가했는지 그 백그라운드가 중요합니다. 그러면서 나와, 그가 이전에 호평했던 그 감독과의 싸움이 됩니다. 다른 나라 산업적 지형 속에서 만들고 있어도, 완전히 다른 시대에서 끌려와도 마찬가지죠. 예를 들면 정성일 선배의 평론을 읽으며 ‘그래, 지아장커와 붙어봐야겠다’ 뭐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웃음) 아무튼 이들에게는 어떤 남다른 게 있는 걸까, 생각하게 돼요. 그걸 싸움이라기보다는 평론가를 매개로 다른 감독들과 관계를 맺는 거죠. 그렇게 다른 시네필들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맺고 매개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봐요.

​​허 문 영 그 긴장이라는 게 매우 중요한 거 같습니다. 시네필이라는 집단은 오히려 똑같은 취향을 가지고 있을 때 공동체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왜 같은가가 아니라, 우리는 왜 다른가라고 질문할 때 시네필의 우정은 성립합니다.

​​정 성 일 좋은 얘기입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왜 저걸 가지고 싸우나 싶을 정도로 시네필들은 굉장히 조그만 걸 가지고 서로 싸우기도 합니다. (웃음) 오늘 씨네산책의 첫 번째 게스트인 박찬욱 감독의 굉장히 진솔한 고백과 오랜 영화에 대한 사랑을 들을 수 있어서 정말 즐거웠습니다. 모두 감사합니다.

진행·정리 주성철, 김성훈


출처: 정성일, 허문영의 씨네산책, 씨네21, 2010-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