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점에 대한 명상’

어떤 평론가는 이렇게 말했다. “신형철 평론가 때문에 다른 평론가들이 슬퍼졌다.” 신형철이 평론계가 으레 인정해왔던 한계를 훌쩍 뛰어넘기 때문이란다. ‘좀체 잘 팔리지 않는다던 평론집도, 신형철이 내니 베스트셀러가 되더라.’ – 라는 식이다. 그가 쓴 산문집 <느낌의 공동체> 중 ‘구두점에 대한 명상’을 공유한다. 신형철의 글쓰기 비법 중 일부를 엿볼 수 있을지 모른다.

문장에 관한 한 만국 공통의 기본은 구두점이다. “어차피 우리가 쓸 수 있는 것은 단어뿐이니, 이왕이면 구두점 하나라도 제자리에 잘 박히도록 하면 좋지 않겠나.” (레이먼드 카버) 그래서 오늘은 구두점에 대해 명상하려고 한다.

먼저 쉼표. 소설가 에번 코넬(Evan Connell)은 단편소설의 초고를 읽어내려가면서 쉼표를 하나하나 지웠다가 다시 한번 읽으면서 쉼표를 원래 있던 자리에 되살려놓는 과정을 거치면 단편 하나가 완성된다고 했단다. 강박증 환자처럼 보이지만 실은 치열한 문장가가 아닌가. 불필요한 곳 혹은 엉뚱한 곳에 나태하게 찍혀 있는 쉼표는 글의 논리와 리듬을 망쳐놓는다. 쉼표는 전혀 사용하지 않거나 아주 많이 사용해야 한다. 쉼표를 사용할 필요가 없는 천의무봉의 문장을 쓰거나 쉼표의 앞뒤를 섬세하게 짚게 하는 치밀한 문장을 만들어야 한다.

그다음 느낌표. 근래 부쩍 남용되고 있는 부호다. 느낌표를 남발하는 사람은 얼마 안 남은 총알을 허공에다 난사하는 미숙한 사격수와 같다. 느낌표에 대해서라면 우리는 거꾸로 행동해야 한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감탄할 만한 대목에는 느낌표를 찍으면 안 된다. 자아도취적으로 찍혀 있는 감탄 부호 앞에서 독자는 저항감을 느껴 감탄하지 않으려 기를 쓸 것이다. 작가가 먼저 ‘느끼면’ 독자는 냉담해진다. 반대로 전혀 감탄할 만하지 않은 대목에 의외로 찍혀 있는 느낌표는 유혹적이다. 그때의 느낌표는 어쩐지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싶다는 고분고분한 선의를 불러일으킨다.

마지막으로 말줄임표와 마침표. 흔히 말줄임표를 자주 사용하면 글이 겸손해 보인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움베르토 에코는 이렇게 적었다. “아마추어는 말줄임표를 마치 통행 허가증처럼 사용한다. 경찰의 허가를 받고 혁명을 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말줄임표는 겸손함이 아니라 소심함의 기호다. 마침표에 대해서는 긴 말이 필요 없다. 담배는 백해무익이요, 마침표는 다다익선이다. 많이 찍을수록 경쾌한 단문이 생산된다. 이사크 바벨(Issac Babel)은 이렇게 썼다. “어떠한 무쇠라 할지라도 제자리에 찍힌 마침표만큼이나 강력한 힘으로 사람의 심장을 관통할 수는 없다.” 이 글에서는 서른다섯 번 찍었다.

(2008. 3. 15)

출처: 신형철, 《느낌의 공동체》, 문학동네,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