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vengers: Endgame(2019)



왜 아이언맨이어야만 했는가


어린 나이에 일찍이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CEO가 된 토니 스타크는 안하무인 한 성격의 소유자다. 또한 타고난 부와 화려한 언변으로 도박과 주색잡기에 능한 그는 ‘영웅’이라는 칭호가 가장 안 어울리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던 어느 날, 테러조직에게 납치를 당하면서 토니는 탈출을 모색한다. 토니는 테러조직이 요구한 미사일 대신 강철수트를 제작해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이것이 아이언맨의 시초다. 여기에는 영웅이라면 필히 요구되는 그 어떤 희생정신도 없다. 불가피한 상황에 의해 탄생한 아이언맨은 본의 아니게 슈퍼히어로로서 막중한 임무를 떠맡지만 여전히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시한다. 하지만 종국에는 자신을 희생해 세상을 구하는 전 우주적 영웅이 된다. 수많은 영웅 중에 지극히 개인주의자였던 아이언맨이 최후의 영웅이 되었다는 사실은 다소 아이러니한 부분이다. 그렇다면 다른 어벤저스 멤버들은 아이언맨의 자리를 대체할 수 있을까.


아이언맨과 마찬가지로 불가피한 상황에 의해 탄생한 헐크는 초인적인 체력과 힘을 자랑한다. 비록 부상은 조금 입었을지언정 핑거스냅을 하고 무사했던 전적도 있다. 헐크가 다시 한 번 핑거스냅을 했다면 토니가 죽지 않는 해피엔딩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헐크에게는 ‘브루스 배너=헐크’라는 명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토니 스타크와 아이언맨이 동일한 인격체라면 브루스 배너와 헐크는 분리된 인격체다. 심지어 둘은 서로 대립하는 존재다. 브루스 배너에겐 명석한 두뇌와 지식이 있지만 세상을 구할만한 힘이 없고, 헐크는 막강한 힘이 있지만 평균이하의 지능수준을 갖고 있다. 또한 브루스 배너는 어벤저스에 합류하기 이전에 헐크를 질병 내지는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 반면에 헐크는 어벤저스가 되어도 어디까지나 ‘녹색 괴물’로 타자화되는 자신의 존재에 회의감을 느끼고 지구를 떠난다. 타노스가 지구의 절반을 날려버리고 난 후에야 둘은 합의점을 도출하는 데 성공하지만 지금껏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보여준 헐크의 정체성은 브루스 배너와 분리된 타자화 된 존재다.


그렇다면 토르는 어떠한가. 헐크에 가공할만한 힘을 자랑하는 토르는 헐크에겐 없는 비범한 능력까지 갖추고 있다. 바로 천둥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능력이다. 또한 그는 타노스에 의해 그가 사랑했던 모든 것—동생 로키와 그의 왕국 아스가르드—를 잃는다. 이로써 타노스를 죽일 명분도 명확하다. 그러나 토르는 신의 아들이자 한 나라를 통치하는 왕실의 혈통이다. 다른 어벤저스 멤버들과 달리 태생부터 이미 영웅의 위치가 점지된 인물이다. 그래서 토르는 아이언맨을 대신할 수 없다. 이미 영웅의 운명을 타고난 그가 세상을 구하는 건 더 이상 놀랍지도 새롭지도 않고 그저 당연한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북유럽 신화를 모티브로 한 <토르>의 중세적인 세계관에선 단순한 영웅 서사구조가 이질적이지 않다. 그러나 훨씬 더 입체적이고 복잡한 마블 전체의 세계관에서는 아니다.


마블의 세계관은 절대 안타고니스트(타노스)의 타도라는 공동의 가치를 추구하는 동시에, 어벤저스 내부에서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를 주축으로 하는 두 세력이 대립하는 구도다. 즉, 마블의 정치적 입장을 대변하는 인물은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 두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최후의 영웅은 반드시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 둘 중 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두 캐릭터는 각각 ‘미국의 자본과 첨단기술’ 그리고 ‘국가에 대한 충성과 방어체제’를 표상한다. 또한 비속어를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고 본인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토니와 반대로 캡틴은 언제나 정치적으로 올바름을 추구하고 정의, 우정 등의 이상적인 가치를 실현하는 인물이다. 결정적으로 아이언맨은 개인의 생존을 위해 탄생했지만, 캡틴 아메리카는 대의를 위해 탄생되었다.


그렇다면 왜 캡틴 아메리카가 아닌 아이언맨인가. 캡틴 아메리카는 그 어떤 어벤저스보다 영웅이라는 자리가 적합한 인물이다. 캡틴은 토르처럼 고귀하고 비범한 태생은 아니지만 그의 내면은 처음부터 영웅의 조건을 충족한다. 심지어 캡틴 아메리카가 되기 훨씬 이전부터 그는 이미 영웅이었다고 할 수 있다. 스티브 로저스가 캡틴 아메리카가 됨으로써 달라진 점은 혈청을 주입함으로써 신체적 결함을 극복했다는 사실밖에 없다. 즉, 캡틴 아메리카가 세상을 구하는 건 토르만큼이나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그는 아이언맨을 대신할 수 없다. 처음부터 강했던 사람은 어디까지나 강자일 뿐, 결코 용기 있는 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아이언맨은 실패와 실수를 거듭하는 인물이다. 아버지와의 관계에 실패했고, 자신이 만든 무기가 심장에 치명상을 입혔고, 지구를 지키기 위해 개발한 로봇은 도리어 인간을 공격했다. 방어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토니의 태도는 어쩐지 실패 속에서 상처받은 인간의 모습을 닮았다. 그래서 아이언맨의 용기는 크게 표현된다. 결핍과 실패의 상징이었던 아크 원자로는 토니가 강철수트를 입고 지구를 구할 때 비로소 아이언맨의 심장이 된다. 인간을 닮은 영웅 아이언맨은 이제 역으로 관객의 삶을 편집한다. 관객은 실패하고 실수하는 아이언맨을 통해 과거의 경험을 객관적으로 재경험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토니와 함께 의미 없는 실패는 없음을 깨달을 때 더 나은 존재로 성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1400만 605가지의 경우의 수 중에 어벤저스가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아이언맨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