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lking Dead Season 8

미국은 물론이고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던 <워킹데드>는 시즌7부터 갈피를 못잡고 방황하기 시작했다. 필요 이상으로 많은 에피소드와 그로 인해 느려진 전개, 충격적인 원년 멤버의 죽음 등이 원인이었다. 실망한 팬들은 하나 둘 떠나기 시작했고 <워킹데드>의 인기도 그렇게 퇴색되어갔다. 그렇다면 시즌8은 어떨까. 지난 시즌의 문제점을 보완했을까? 안타깝게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점점 설득력마저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워킹데드>가 급격히 방향성과 설득력을 잃어버린 원인은 니건이라는 캐릭터에 있다. 니건은 시즌7~8의 빌런이자 두 시즌의 서사를 결정짓는 핵심적인 캐릭터다. 그러나 그는 빌런으로서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 니건은 첫등장에서 강렬한 임팩트를 남겼으나 니건이 강력해서가 아니라 글렌의 죽음에서 오는 충격 때문이었다고 보는 게 더 타당하다. 그는 주로 치밀한 계획 하에 그의 부하들을 동원해 알렉산드리아를 습격하는 식으로 전략을 세워왔다. 처음 릭 일행을 참패시켰던 것도 바로 이 전략이었다. 그러나 이번 시즌에서 드러났듯이 니건은 개인으로서의 역량이 부족하다. 하물며 <워킹데드> 세계관의 최강 빌런으로서는 더욱 적절치 않다.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악당을 두 시즌에 걸쳐서 상대하다보니 위에서 열거한 부작용이 나타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난 시즌과 이번 시즌에 있어서 니건의 행동은 일관성이 떨어진다. 니건은 지난 시즌에서 글렌의 아이를 임신한 매기 앞에서 글렌을 잔혹하게 살인하고 칼을 조롱했었다. 그러나 이번 시즌에선 글렌을 죽이고 싶지 않았다고 말하고 칼의 죽음에 진심으로 안타까워한다. 전쟁터에서 적군을 죽이는 것처럼 생존을 위한 살육이었다면 니건의 태도가 이해됐을 것이다. 하지만 니건은 글렌을 비윤리적으로 살해했으며 칼을 조롱하는 행위는 생존과 더 더욱 관계가 없었다.

니건이 칼의 죽음에 통감했던 이유는 궁극적으로 주제와 관련이 있다. 칼은 이번 시즌 내내 긍정적인 변화를 위해 줄곧 행동하기를 촉구했다. 그리고 그 행동에는 ‘용서’가 포함되었었다. 결국 릭은 칼의 뜻대로 니건을 죽이지 않고 살려두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릭은 이상주의자도 아니고 그룹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적군을 살려둘만큼 자비롭지도 않다. 릭은 가버너처럼 타인을 무조건적인 도구로 여기지도 않고 니건처럼 공포정치로 권력을 유지하지도 않지만 그에게도 그룹의 안위는 최우선순위이다. 그런 그가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급작스러운 변화를 꽤하는 모습은 지금까지 보여준 릭이라는 캐릭터와는 부합하지 않는다.

<워킹데드>는 좀비 아포칼립스라는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캐릭터들이 점점 변해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춰왔다. 릭은 일곱 개의 시즌을 거쳐오면서 윤리의식에 대한 기준치가 점점 낮아지는 쪽으로 변화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지만 일단 한 번 변해버리면 그 이전으로 돌아가기란 훨씬 어렵다. 이미 변할대로 변해버린 릭은 칼의 죽음에 다시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기를 시도한다. 그래서 릭의 시도는 설득력이 없다. 캐롤과 모건 정도를 제외하면 지금껏 스스로를 자정하려고 노력하는 캐릭터는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릭과는 먼 얘기였다.

물론 릭에게는 칼의 죽음이라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칼은 시즌을 거듭하면서 외적인 성장과 내적인 성장을 거친 캐릭터다. 그리고 칼에게는 성장 했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로리가 죽고 주더스가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시즌에선 칼이 생각을 바꾸고 싸움을 멈추도록 주장한 원인이 부재되어 있다. 칼은 어디까지나 다른 캐릭터와 스토리 라인의 변화를 위해 소모적으로 이용당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start over’, ‘forgiveness’ 같은 그의 마지막 메시지는 공허하게만 느껴진다. 차라리 누군가를 도와줬던 칼은 죽었고 반대로 누군가를 죽인 자신은 살았다고 말했던 이니드의 주장이 더 설득력 있다.

타란티노가 그랬다. 악당을 갑갑하고 옹졸하게 죽이도록 영화를 만드는 인간들은 모두 영화 감옥에 보내버려야 한다고. 과격한 언사 뒤에는 영화를 게으르게 연출해선 안 된다는 뜻이 담겨있다. 스토리텔링은 의외로 매우 논리적인 영역이다.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영감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 신들린 듯이 술술 서술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스토리는 철저히 논리적인 근거와 고증을 바탕으로 탄생한다. 그러나 <워킹데드>는 시간을 공들여 인물들의 변화를 천천히 보여주는 대신 칼을 죽임으로써 모든 걸 해결했다. 게으르고 나태하고 또 괘씸한 연출이다. <워킹데드> 제작진은 시즌1부터 쭉 성장을 거듭한 칼이라는 캐릭터를 소모적으로 죽인 댓가로 기필코 영화 감옥에 가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