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rn The Stage: The Movie(2018)



방탄소년단이라는 그룹이 내 머릿속에 각인되기 시작한 건 지인의 초대로 갔던 콘서트에서였다. 누가 누구인지 구별도 안가고 다 비슷비슷한 아이돌 그룹의 무대가 연이어져 지겨워질 때쯤 유난히 큰 함성소리가 들렸다. 방탄소년단의 차례였다. 커다란 경기장이 비트와 응원소리로 가득 찼다. ‘쟤네가 방탄이야?’ 다분히 삐딱한 시선으로 무대를 올려다보던 나는 몇 초 후에 자세를 고쳐앉았다. 랩 몬스터를 제외하곤 이름도 얼굴도 노래도 잘 몰랐지만 집중할 수밖에 없는 무대였다. 콘서트 짬밥도 많고 아이돌 무대도 많이 본 편인데 방탄처럼 온몸을 불사지르면서 무대하는 아이돌은 처음이었다. 심지어 라이브로. 첫 무대에 대한 인상이 너무 강렬해서 그 다음 무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중에서야 첫 번째 무대가 ‘MIC Drop’이었단 걸 알았다.

그 이후로 방탄소년단의 데뷔 때부터 현재까지의 무대를 찾아보고 비공식적으로 발매한 멤버들의 믹스테잎까지 찾아들었다. 방탄소년단의 타임라인을 쭉 복습하면서 느꼈던 그들의 장점은 멤버 개개인의
능력치가 좋은 동시에 멤버간의 밸런스가 이상적이라는 것 그리고 음악이든 무대든 독기가 느껴진다는 것. 세대 교체가 빠른 연예계 안에서도 아이돌은 유독 수명이 짧은 편이다. 보통 남자 아이돌은 늦어도 데뷔 2년차엔 떠서 4년차부터 조금씩 하락세에 접어든다. (물론 이것도 뜬다는 가정 하에 말이다.) 그 당시 방탄소년단은 이미 데뷔 5년차 중견 아이돌이었다. 섭리대로라면 새로 치고 올라오는 신인 아이돌에게 밀려서 원래 자리에서 조금씩 내려와야만 했다. 그런데 여기가 방탄소년단의 한계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직 발전의 여지가 더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독보적이었다. 힙합 아이돌, 퍼포먼스형 아이돌은 많지만 그 두 가지를 모두 소화하는 팀은 없었다. 다시 말해, 대체할 그룹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돌에 전혀 관심 없던 주변 지인들에게서 거짓말처럼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빌보드까지 진출하는 이례적인 역사를 기록했다.

사실 이 얘기는 다큐멘터리와 전혀 상관이 없다. 방탄소년단이라는 팀에 대한 나의 이해도와 애정도가 이 정도라는 것, 그래서 이번 다큐멘터리에 대한 기대감이 결코 적지 않았다는 것을 고지하기 위한 사족에 불과하다. 결과적으로 실망스러웠다. 감독이 방시혁의 최측근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 만큼.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형편 없는 수준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을 리 만무하다. 우선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감독의 의도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무대를 위해 몸 사리지 않는 방탄소년단의 열정과 노력? 미래가 불투명한 중소기획사 출신 아이돌에서 월드 와이드 아이돌로의 성장? 혹은 방탄소년단이 아닌 인간 김석진, 민윤기, 정호석, 김남준, 박지민, 김태형, 전정국의 삶? 그것도 아니면 전 세계 팬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선사하는 방탄소년단의 영향력? ‘Burn The Stage’라는 제목을 고려한다면 첫 번째 주제가 가장 타당해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83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너무 많은 주제를 담다보니 결국 아무것도 담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편집이 매끄럽지 못하고 내레이션과 음악, 영상이 전부 따로 논다. 차라리 내레이션 없이 멤버들의 인터뷰와 무대 아래에서의 모습, 그리고 공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편이 더 나았을 거란 아쉬움이 남는다. 아무리 그래도 제목이 ‘Burn The Stage’인데 무대 하나쯤은 보여주겠지, 라는 나의 기대를 완벽하게 져버렸던 게 나름의 반전이라면 반전이다. 무대는 아니었지만 ‘Burn’하긴 했다. 연출력이 ‘Burn’해버렸다. 솔직히 방탄소년단의 팬이 아니라면 전혀 추천하고 싶지 않다. 아직 코어팬까진 아니라서 그런지 호감 정도로는 도저히 괜찮게 감상할 수가 없다. 팬덤 특수를 의도하고 게으르게 제작한 티가 나서 더욱 그렇다. 슈가가 그랬지, 성공의 비법은 몰라도 망하는 비법은 알 것 같다고. 아무리 방탄소년단이 인기가 많아도 이 따위로 영화 찍으면 망한다.